책 '최고의 공부' 후기(Audrey)
'최고의 공부'란 무엇인지 알려주는 이 책은, '최고의 공부스킬'이 아닌 '최고의 공부를 하는 주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우선 진짜공부를 하려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고, 누구보다 자신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의 시작이자 끝이다. 단순히 학습에 국한된 내용이 아니라 인생 전반을 다루고 있다. 학습하는 태도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주체로 두고, 내면에서 동기를 찾고, 스스로 학습을 관리하고, 나한테서 보상을 얻는 것. 말은 쉽지만 과연 ‘자기 사랑’ 없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끊임없이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사고를 성찰하고, 나의 의도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가볍게 제낄 수 있으려면, 그리고 이 과정을 지속하려면 매우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절대 외부에서 얻을 수 없으며, 얻더라도 나의 진정한 성장을 위한 추진력을 결코 만들어내지 못한다.
같은 맥락에서, 창의성의 본질 또한 외부에 잊지 않다. 자기 자신이 되고, 나만의 독특함을 발휘한다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창의성'은 사전적으로, 비범한 아이디어를 산출하거나 또는 전통적 사고 유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유형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비범한 아이디어, 새로운 유형은 결국 나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이 세상에서 나와 100% 똑같은 사고를 하고,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없다. 고유한 나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창의적인 활동인 것이다. 우리는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간단한(하지만 쉽지 않은) 방법을 두고 누군가가 되려고 하거나,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사고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는 본래 창의적으로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잠재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많은 학생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그들은 외부로부터 심어진 동기에 의해 움직인다. 나로부터 나온 에너지가 아닌 '가짜 에너지'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배움에 열정을 느끼지 못해 피상적 학습자로 전락해버리고, 실패가 계속되면 배움 자체에 염증을 느끼거나 부족한 실력을 내 전반적인 능력 부족으로 확대해석한다. 반면 '최고의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내면에서부터 올라오는 열정으로 기꺼이 지적 모험을 즐겨 놀라운 통찰을 얻는다. 그리고 열린 태도로 학문을 대하며, 실패하는 경험도 포용해 거기서 교훈을 얻는다.
피상적 학습자는 사회에 나가서도 매사에 피상적인 접근을 하게 되는 반면, 최고의 학습자들은 대학 때의 지적 모험 경험을 기반 삼아 그 이후의 삶에서도 다양하고, 다이내믹한 활동들을 해나간다. 그들에게 사회는 나의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놀이터와도 같다. 나만의 능력과 관점으로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그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럽고 재밌는 일이다.
사실 이 책의 내용들은 초중고등학교때부터 활발히 가르쳐져야 한다. 내적 동기가 아닌 외적 동기에 휘둘리지 전에. 어느 분야에 대한 자신의 순수한 열정이 식기 전에. 하지만 지금의 학교는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개발하는 걸 방해하고 있다. 왜 국어선생님이 읽어주는 시 해설을 무조건 암기해야 하고, 왜 수학 공식의 원리를 몰라도 된다고 하는 걸까? 잠재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당장의 성적 1, 2점 올리는 것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역사에 재능이 뛰어난 학생이 전반적인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자신감을 잃고, 진정 원하는 공부 분야를 말하면 돈 벌기 힘들다며 다른 분야를 권하는, 피상적이고 전략적인 학습법을 부추기고, 깊이 있는 학습을 방해하는 문화가 한국 교육제도에 너무 뿌리 깊다. 그렇게 외재적 동기에 의해 공부해서, 사회적 성공 기준에 맞게 사회에 나간 사람들한테 묻고 싶다. '그래서 만족하는가?' 주변만 살펴봐도 전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언니 친구만 해도, 번듯한 직장에만 들어가라는 부모님의 말만 듣고 제일 '좋다는' 경영대에 들어가고, 조건이 '괜찮은' 아무 직장에 들어갔지만 현재 내적으로 매우 '안 좋고, 안 괜찮은 상태'에 있다. 자신이 잘하고, 열정을 쏟는 일이 따로 있었지만, 결국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했고,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공부하는 법을 배우는 이유, 그 중심에는 ‘자립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배우고, 책을 읽어도 자신이 주체로 서지 못하고, 스스로 사고하는 존재가 되지 못하면 지식은 그저 지식으로만 남을 뿐, ‘지혜’가 되지는 못한다. 공부는 평생 동안 해나가는 과정이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배우는데, 그 배움을 지속시키는 힘이 바로 '올바른 공부법’이다. 그리고 올바른 공부법은 단순히 성적을 올리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지식을 담아내는 그릇은 본인 그 자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신을 사랑하고, 나의 취약함도 수용한다면 어떤 지식을 접하든, 어떤 경험을 하든 모두 배움으로 받아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의식혁명'에서 말하는, 내면을 추구하고 삶에 의미를 갖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by Audr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