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과학이 빛나는 밤에' 근대과학혁명 3, 4편 후기 by Audrey
[과빛밤 근대과학혁명 3편 _ 역학 혁명, 강력한 사고의 힘]
과학혁명의 중심은 물리학의 혁명이고, 물리학 혁명의 핵심은 역학 혁명이다. 물론 혁명의 시작은 천문학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천문학이라는 분야도 결국 물체의 운동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역학이 더 중요한 요소이다. 역학은 천문학 혁명 중 새로 발견된 사실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발전됐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공전할 때 어떻게 도는가? 왜 도는가? 왜 인간은 지구가 도는 걸 느끼지 못하는가?’ 등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물리학자들이 이 질문의 답을 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의 ‘사고의 힘’이 빛을 발했다.
뉴턴은 만유인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어떻게 도는가?’에 대한 답 발견한다. 만유인력은 물체들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을 말하는데, 만약 공기의 마찰이 없다면 만유인력으로 인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뱅글 뱅글 계속해서 돌 수 있다. 마찰이 없다면 지구가 공전하는데 한 번 운동을 하고 난 후 그 운동 상태를 유지할 에너지가 필요 없고, 만유인력 덕에 지구와 태양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뉴턴이 이 현상을 설명해내는 데에는 ‘관성’이라는 개념을 발견해낸 갈릴레이의 공이 컸다. 엄밀히 말하면 갈릴레이의 ‘사고의 힘’이 큰 힘이 된 것이다.
만유인력으로 왜 공전 궤도가 타원형인가 하는 의문도 풀린다. 태양이 워낙 질량이 크기 때문에 태양 주위를 돌게 하지만 지구 자체도 질량을 어느 정도 갖고 있어서 지구 나름대로 태양을 끌어당기고 있다. 때문에 공전 중심이 지구 쪽으로 살짝 쏠려 궤도가 완벽한 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지구가 태양 주위를 총알 속도보다 더 빠르게 도는데 왜 인간은 그걸 전혀 느끼지 못할까?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그 속도 안에서 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가 진공 상태인 고요한 우주 속에서 돌기 때문에 더더욱 느끼지 못한다. 다행히 운동 상태와 물체는 무관하기 때문에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는 이 순간 우리는 찌그러지지 않는다. 지구가 공전한다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공전하는 게 당연하다. 따라서 전부 동시에 같이 움직이므로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공전을 느끼지 못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물리학의 혁명의 핵심은 순수한 사고의 힘이다. 이게 바로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사고의 힘이 중요하고 또 무서운 이유는 실제로 보이지 않는 현상을 넘어 가상의 상황을 생각하고, 상상하고, 실험해서 복잡한 현상을 단순화하기 때문이다. 갈릴레이가 눈에 절대 보이지 않는 ‘관성’을 밝혀내 천문학, 물리학의 비밀을 풀듯이 말이다.
[과빛밤 근대과학혁명 4편 _ 문명들의 협동 = 과학혁명?]
과학혁명이 하필이면 16, 17세기에, 그리고 유럽에서 일어난 이유가 따로 있을까? 그게 맞다면 그렇게 만든 중요 포인트들은 무엇이었을까. 그 시기 유럽의 상황을 살펴보면 그 해답을 하나씩 얻을 수 있다.
유럽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다국가 체제였다. 오스만투르크가 독주하는 중동 지역, 중국이 독주하는 동아시아 지역과는 달리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러 국가가 경쟁을 통해 비등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항해를 통해 식민지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항해를 더 정밀하게 하기 위해 천문학이 크게 발달했다. 서로 경쟁하는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과학의 발전'이 힘 겨루기의 큰 변수가 됐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다국가 체제가 유럽의 과학을 자연스럽게 발달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유럽의 중인 계급 성장 또한 과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유럽의 중인 계급들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사회적 지위가 높은 편이었다. 나라를 뒤바꾸는 시민혁명, 명예혁명 등을 일으킬 만큼 말이다. 상공업에 종사하는 중인 계급의 사람들은 생업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과학 지식을 연구하는데 집중했다. 갈릴레이도 이들에게 배울 만큼 측정과 계산에 있어서 뛰어났다. 이들의 실용성을 추구하는 마인드가 과학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더 발달하게 만드는 추진력이 된 것이다.
유럽의 과학자들은 대부분 기독교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이 사실도 과학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기독교에선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종교적이었던 과학자들은 신이 설계한 이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는 것을 그들의 신성한 임무라 생각해 더 열정적으로 연구에 몰입할 수 있었다. 중국의 경우 지식인 계층이 거의 유교 사상에 빠져있었는데, 유교에서는 절대적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세상의 질서를 밝히는 일에 큰 동기를 갖지 못했다.
신이 창조한 이 세상을 신한테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눈으로 밝혀내고 해석하는 게 어찌 보면 아이러니할 수 있다. 실제로 그리스 시대의 사람들은 자연에 대해 신화적이고 추상적으로만 이야기했다. 하지만 탈레스, 데모크리스토스 등 밀레투스 지방의 자연철학자들은 신에게 의존하지 않은 채 직접적으로 자신이 생각한 이론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합리적으로, 학문적인 태도로 접근했다. 이런 경향이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에게도 이어졌고 과학이 발전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신이 만든 세상을 설명하지만, 신에게 의존하지 않는 태도를 지닌 이론들을 이단으로 몰고 비난한다. 그래서 이런 지식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중동 지방으로 피신을 간다. 다행히 중동 지방에서는 그리스의 자연철학을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인도의 수학 이론들, 중국의 제지, 인쇄 기술을 들여와 후원하기까지 해서 과학이 혁명적으로 발전하는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다.
하나의 변수라도 빠졌다면 과연 과학혁명은 일어났을까? 물론 진화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조합해 생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가 될만한 사건들, 배경들을 찾아보고 그것이 만들어낸 임계의 순간들을 보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당시의 과학자들은 과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세상이 어떠한지 알아가는 재미를 알았다. 하지만 시작 단계에 있었기에 과학을 통해 우주의 모든 것을 알게 될 거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생각은 현대과학에 들어서 제대로 깨지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인간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있다'라는 사실을 이해한 시점까지 왔다.
by Audr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