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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해야 하는가

BU editor 2014. 6. 28. 20:23

나는 왜 공부해야 하는가

'철학적 사고로 배우는 과학의 원리' (학문의 원리, p.16-39)



'학문'이라는 것은 '무'에서 세워지지 않는다. '공리'에서 출발한다. '공리'를 토대로 어떤 사실들이 '논리적'으로 차곡차곡 정리되고 쌓여 형성된 것이 학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공부해 왔다. 하지만 이 공리가 '참'인가, '진실'인가하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보려는 시도는 허락되지도 않는다. '논리적'이지 않은 말을 하거나, '자명한' 공리에 대해 '왜 그런가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은 이상하다거나 바보로 취급이 되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학자들은 처음엔 그런 이상한 바보들이었다.


너무도 자명하다고 여겨져서 이를 '왜 그런데?'라고 물어보면 바보 취급을 당할 수도 있었던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를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가 뒤집고 새로운 공리를 세워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었다. 가우스에 의해 뒤집어지긴 했지만, 유클리드 역시 기존의 공리를 뒤엎어서 수학이라는 학문을 더 넓힌 사람이다. 그 위대하다는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고집을 부리며 무시하고 경멸하기까지 했던 '무리수'의 존재를 보란 듯이 증명해내었는데, '혼란의 수'인 무리수는 원주율 '파이'처럼, 자연의 미묘한 법칙을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공리'라는 것은 너무 자명하다고 여겨져서 증명되지 않은 어떤 법칙, 약속이다. 어떤 위대한 권위자가 '이건 이렇다고 해!'라고 우기면 그것이 공리가 되기도 한다. '논리적'이라는 말조차도 차근차근, 바보가 되어 따져 보면 그냥 "일단 이렇다고 해두자"라는 약속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논리적이지 않은 '모순'도 사실은 그냥 '이런 건 모순이라고 하자'라는 약속이다. '공리'도, '논리적이다'라는 것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그 실체는 없다. 각 공리를 보고 우리가 만들어낸 관념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계'에만 둥둥 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학문'이라는 것은 그냥 학자들이 약속한 것일 뿐이라는데, 그것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데, 그렇다면 왜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과 정리가 등장하고, 우리는 왜 그것을 공부하는 것인가. 뭘 어쩌라는 말인가! 학문체계로 절대적인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데 다른 동물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말고 먹고 자는 것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공리'라는 토대 위에 '논리적'으로 차곡차곡 세워진 증명들이 정말 신비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공리가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라는 것은, 그것을 부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유연해져도 된다는, 자유를 가져도 된다는 따뜻한 말이다. 새로운 공리가 만들어졌어도, 유클리드 기하학은 그 자체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기하학을 이용해 '또 다른' 측면에서 자연을 좀 더 가까이 설명하는 학문이 되는 것이다.


학문의 구조에 더 깊숙하게 들어가서, 아주 근본적으로, '언어'로 이루어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필요도 있다. '언어'는 본래 인간이 더 '잘' 살아남기 위한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 본질은 없어지지 않는다. 학문도 본질적으로는 더 잘 살기 위한 도구이다. 우리가 이동 수단으로 당연하게 사용하는 자동차를 생각해보자. 자동차는 처음에, 더 편리하게 이동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여 발명되었다. 그리고 더 넒은 세상을 보기 위해, 바다와 강을 건너기 위해 '배'가 만들어졌고, 더 멀리, 더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비행기'가 만들어졌다. 이동 수단으로 자동차'만' 있다고 알고 있거나, 자동차가 '이동 수단'이라는 것을 모른다면 세상은 거기가 끝이다. '이동수단'으로 비행기'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것 자체로도, 더 넓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자유로움을 느끼지 않는가.


우리는 '제대로' 공부함으로써 '한층 더 넒은' 시각을 갖게 되는 이로움을 얻게 된다. 학문은 세상을 더 잘 살 수 있게 하는 도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더 재미있게 살기 위해, 더 깊고 넓은 세상을 살기 위해, 내 의사나 생각을 더 잘 전달할 수 있기 위해, 또 다른 학문을 얼마든지 공부해볼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질 수 있다. 각 학문의 원리를 알고 있다면, 특정한 틀 안에서 우쭐대는 것을 멈출 수도 있고, 그 안에서 헤매며 불평 불만만 늘어놓으며 앉아있지 않아도 되며, 필요에 따라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새로운 공리를 세워볼 수도 있다. 그게 우리가 공부해야 할 이유다. 더 '잘' 살기 위해 말이다.





by i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