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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파이터' 후기 _ 겸손함 by Elizabeth Taylor P.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1. 7. 14:09

겸손함



기질적으로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일까, 나는 세상과 격리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내 생각과 삶의 많은 부분에서 타인과 환경에 의해 조건화되었지만 그동안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 양보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배움'이었다. 내가 정말로 배우고자 하는게 무엇인지, 무엇을 배워야할지 알 수 없었기에 섣불리 대학교와 과를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은 타협하고 싶지 않았기에 오랜기간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오랜 수험기간을 거치면서도 나는 행복했다.

외로움도 많았다. 친구들이 캠퍼스 생활을 하고 연애를 하고 졸업을하고 취직 준비를 하고 결혼을 한다는소식을 들을때 가끔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인적이 드문 산속 고시원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내 자신을 내방에만 가두고 아무와도 닿지 않도록 내 자신을 더욱 몰아부쳤다. 좁은 틀에 갇힌 작은 배움의 길이었지만 그러한 배움에 대한 나의 열정에 추위도 더위도 무서워하는 벌레도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아무런 내적 힘이 없었던 나에게 작은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고수의 길도, 고된 수련의 길도 못할것 없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고수가 되고 싶다며 눈을 크게 뜨고 악물고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바람의 파이터를 보고 나는 감히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안들고 한숨만 나오고 고수가 된다는 것의 의미가 뭔지도 모르고 되고 싶다고 말했던 내 자신이 안타깝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에게 부족한 그것, 핵심적인 그것은 바로 '겸손함'이었다. 나의 6년간의 수험생활이 겉으로보기에는 고되고 대단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겸손한 태도가 없었다. 그저 나만의 작은 세계에 갇혀 어린아이 장난 놀이나 하고 있었던 것을 대단한 훈련을 한듯이 착각했던 것이다.

진정으로 세상과 격리되어 진정한 전문가, 고수가 되기 위해 훈련하고 배운다는 것의 의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뿐만아니라 정말 내적인 훈련과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것 그리고 그것은 겸손함이 삶의 원칙, 즉 삶 자체가 되었을 때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고수는 되고자 하는 의도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내몰려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고수가 되고자 한다.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진정으로 학문하는 태도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갖춰나려고 한다. 내가 올바른 정보와 지식을 통해 삶에 이로움을 얻었듯이 나만의 '도구'로 정보를 창조적으로 재탄생시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식전문가, 지식고수가 되려고 한다. 정말 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의 '태도'이다. 나를 들뜨게 만들고, 잠도 자기 싫을 만큼 열정적이게 만드는 나의 내적 울림의 길을 따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행착오하며 가보고 싶다.


by Elizabeth Taylor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