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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후기 _ 쿤&포퍼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BU editor 2014. 4. 6. 22:02

'과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나누는 기준, 과학하는 자세 그리고 과학만의 특별함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해 과학자들보다 과학철학자들이 더 할말이 많을 것이다.


과학철학자들은 모두 과학만의 특별함을 인정한다. 즉 과학은 다른 지식 체계를 축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기준, 자세, 특성)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친다. 그 다른 이론 체계들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곧 과학철학사일 것이다. 특히 20세기 전반을 풍미했던 철학 사조인 논리 실증주의와 반증주의는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과학을 과학이게 만드는 요소를 과학만의 '방법'에서 찾으려고 했다.

중세에는 경험의 과정 없이 오직 사유로만 어떤 법칙이나 원리를 얻어내려고 했으나, 이런 방법은 근본적으로 단단하지 못하다. 하지만 17세기에 근대 과학이 등장으로 인해 이런 낡은 과학의 지식체계는 새롭게 변모했다.

최초로 지식 방법론은 만든 사람은 베이컨이다. 그는 '귀납주의'(논리 실증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를 통해 편견 없는 관찰과 귀납추론을 통해서만 지식의 축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위대한 과학자들은 귀납주의에서 말하는 방법론을 따르지 않을뿐더러 귀납주의 방법론은 논리적으로 매우 취약하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특히 관찰된 사례들로부터 경험적 일반화까지 나아가는 건 그 사례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근본적으로 한계를 갖게 된다. 이런 귀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가설 연역적 방법론'이 제기됐지만 이도 귀납주의의 본질을 공유하기 때문에 같은 성격의 논리적 오류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귀납에 문제 있어 카를 포퍼는 귀납이 아닌 연역만으로 과학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반증'이다. 반증주의에서 특징적인 논리적 절차는 용어의 쓰임에서 두드러진다. 포퍼는 가설을 입증하는 사례가 나타났을 경우 귀납추론에서 쓰였던 '입증'의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증의 시도에서 견뎠다'는 의미의 '확인'이라는 용어를 쓴다.

포퍼의 따르면 바람직한 과학적 태도는 반증 시도에 직면하는 합리적인 태도이고,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기준은 반증 가능성의 유무이다. 즉 사이비 과학은 반증할 수 없는 진술들의 집합이고, 사이비 과학자들은 반증 시도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는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과학자들이 이런 합리적인 태도를 갖추고 있을까? 뉴턴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위대한 과학자인 뉴턴이 사이비가 된다면 그 관점 자체가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반증주의는 반증의 논리가 까다롭다는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경험에 의해 시험받는 가설은 늘 여러 명제로 이루어져 있어서 반증 사례가 나와도 어떤 가설(명제)이 틀린 건지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논리 실증주의와 반증주의의 논리적 한계를 보면 과학만의 특별한 논리가 있다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20세기 후반에 위의 이론들은 비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대표적인 사람이 토마스 쿤인데, 그는 비판과 함께 기존의 과학관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20세기 전반의 견해들은 과학은 매우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형태주의 심리학의 연구 성과로 인해 관찰(경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객관적이지 않고 관찰은 결국 이론(배경지식)을 전제로 한 관찰일 수밖에 없음이 밝혀졌다. 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간다.

쿤은 자신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실제 과학은 논리 실증주의자들과 포퍼가 정해놓은 논리대로 가고 있지 않음을 지적했다. 대신 과학에는 '도그마' 같은 것이 필요하고, 드물게 일어나는 과학혁명은 논리적 절차보다도 과학자들의 심리상태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쿤은 과학자 사회가 하나의 패러다임에 의해 지배받는 가운데 과학자들이 벌이는 활동을 '정상과학'이라고 하고 그것이 깨지고 다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것을 '과학혁명'이라고 한다. 정상 과학 시기에 과학자들은 도그마에 기대어, 즉 지배 이론에 따라 그것에 맞는 퍼즐만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 때는 기존의 이론을 뒤집는 변칙 사례가 나와도 퍼즐 자체에 대해선 의심하지 않는다.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이는 과학자들이 그저 도그마에 휘둘리는 퍼즐 맞추는 기계라니 참 아이러니하다.(여기서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기준은 정상 과학의 존재 유무이다.)

과학혁명은 기존 패러다임의 균열로 시작된다. 기존의 패러다임에 반하는 변칙 사례들이 점점 쌓이다가 대안이 등장하면 패러다임의 전이, 즉 과학혁명이 일어난다. 쿤은 이런 과정을 통해 과학이 발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과학은 옛 이론에 뭔가를 덧붙이는 식으로 천천히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지식체계로 교체되는 역동적인 움직임의 산물인 것이다.

포퍼가 과학의 '이상'을 말했다면 쿤은 과학의 '실상'을 밝힌 것이다. 진리에 대해서도, 포퍼는 과학자들이 '추측과 논박'의 과정을 통해 진리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반면 쿤은 '세계란 우리가 패러다임을 통해 인식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쿤은 과학에 관해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실상을 보여주고 그것이 현실에서 잘만 굴러간다는 것을 보여줬다.

쿤 이후로 포러와 쿤의 이론을 절충하는 이론도 있었고, 모든 과학 활동에 적용되는 특정한 방법론을 찾으려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아나키스트적인 이론도 있었으며, 과학을 사회 현상과 다르지 않게 여기고 과학을 과학자들 간의 '협상의 산물'이리고 깎아내리는 이론도 있었다.

이처럼 과학철학사를 들여다보면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무수히 많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이론이 과학을 가장 잘 반영할까? 사회 구성주의학적 관점을 제외하고 공통적으로 과학만의 특별함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 특별함은 과학의 정체를 둘러싸고 그것이 무엇인지, 어떠해야 옳은지 등 여러 논란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과학은 다른 식과는 달리 자연을 직접적으로 상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정확해야 한다. 특수부대가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만큼 혹독하게 훈련하듯이 과학도 자연을 포함한 세계와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혹독하고 엄밀한 이론 체계로 완성될 의무가 있다. 과학철학은 이 과정에서 과학적 방법이 더 정교해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과학을 포함해 어떤 지식 체계도 자연을, 우주를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없다. 따라서 언제나 불확실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과학이 불확실하기에 과학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로 불확실할 것이다. 때문에 과학철학 역시 어떠한 이론이 맞다고 할 수 없이 그저 자신의 이론 주장의 연속이 될 것이다. 

과학자들은 과학철학을 통해 더 정밀한 과학적 방법을 연구하고, 과학하는 태도가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그리고 과학자가 아닌 우리들은 과학철학자들의 견해를 통해 '과학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어떤 것이 과학인지 아닌지를 알아 분별력을 기르고, 또 과학하는 자세를 배워 실제 삶에서 견고한 지적 체계를 쌓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과학철학은 과학의 의미를 잘 전달하며, 과학과 세상을 잘 굴러가게 만드는 윤활유가 아닌가 싶다.


by Audr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