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사고로 배우는 과학의 원리' 1장. 철학적인 무엇(Ocean)
언어, 공리, 논리, 학문은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엄청난 유용성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언어, 공리, 논리, 학문으로 쌓여진 세계 위에서 살아가며 보다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언어, 공리, 논리, 학문을 점검할 필요성이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들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언어는 필연적 의사소통 도구이다. 우리가 어떠한 주장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낼 때, 그 안에는 개인이 자명하게 전제하는 공리가 존재한다. 분별력이 떨어지는 개인은 자신이 전제하는 공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주입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설령 자신이 공리를 안다고 할지라도 공리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세상이 단지 공리로 이루어진 Maya라는 것을, Illusion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10대 때 의무교육을 받으면서, 점·선·면이 이 세상에 실재하는 것이라고 자명하게 받아들였으며 증명조차 필요 없는 진리라 받아들였다. 수많은 학자들조차도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나오기 전까지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진리로 여기려 했다. 공리라는 것이 자명함에도 그들이 믿고 있는 세계가 Maya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서였을까? 그러나 가우스에 의해 유클리드 기하학 5번째 평행선 공리를 ‘평행선도 교차한다’는 공리로 변화시켜 새로운 기하학 체계인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탄생되었을 때 유클리드 기하학은 하나의 Maya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심지어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현대 물리학의 주축인 상대성 이론의 공간 곡률 발견에 영향을 미침으로서 유용성이 측면도 부각된 것은 더욱 큰 충격 이였다.
그렇다면 공리 위의 이론 체계 안에서만이라도 완전한 체계를 갖출 수 있을까?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따르면 반드시 증명도 반증도 불가능한 명제가 이론 체계 안에 존재하게 되며, 이로 인해 완전한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이론 체계 내에서의 증명은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이성을 통해 만들어낸 그 어떤 이론 체계도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리는 단지 약속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어떠한 학문도 완벽한 진리에 다가갈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현실을 살아갈 때 봉착하게 되는 또 하나의 재밌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인간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필연적으로 대칭성이 깨졌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논리를 전개하며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려 한다. 그래서 흔히 말하기를 “당신은 논리적이지 않아”라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진실인가?
사실 논리도 공리와 같이 약속의 산물일 뿐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라는 두 전제에 기반 했을 때,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논리적 귀결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결론이 도출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라는 두 명제가 옳다는 조건이 붙어야 한다. 즉, 저 두 전제로 하나의 결론이 귀결되는 논리적 Process는 결코 합리적이라 볼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렇다고 약속했을 뿐이다. 만약 두 명제가 옳다는 조건이 붙는다 하더라도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명제가 자명하진 않다. 왜 그럴까? 뻔하지 않는가?
따라서 우리가 자신이 논리적인 사람이고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진심으로 완전히 환상이다. 그렇다고 논리성이 무의미함을 강조하는 회의론자가 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최대한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 사고의 논리 Process를 점검하고 또 점검하더라도 애초에 완벽한 논리적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오히려 더 크게 확산되는 경우가 벌어지게 되고 해결 가능성이 없는 곳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되는 비효율성을 초래하게 된다.
사실 언어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환상 위에서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우리가 지각하고 인식하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언어로서 지칭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약속의 시작이다. 우리가 어떠한 대상을 지칭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세상이 진리일 수는 없다. 다만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우주관, 세계관을 창조할 뿐이다. 어떠한 것도 100% 완벽한 진실 된 개념적 정의가 불가능하다. 다만 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개념적 정의를 하자고 약속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어떤 대상에 대해 개념적 정의를 공유할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심지어 우리는 서로 만나서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개념적 정의를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이야기하면서 소통을 한다. 우리는 다만 서로가 믿고 있는 개념적 정의에 의해 소통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 웃기지 않은가?!! 그래서 Business나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서로의 교집합을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같은 개념적 정의에 기초하여 같은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 그 이해의 폭을 최대한 좁히기 위해 계약을 하고 약속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어, 공리, 논리, 학문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아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과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현실에서 수많은 사람과의 소통, 내면의 감정,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 등 인간이 통제할 수도 없고, 고려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이 겹치게 되면 지금까지 논의했던 모든 내용들이 무의미해지는 상황은 수도 없이 발생하게 된다. 우리가 이러한 지식을 접하고 수용하더라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자각하고 또 자각하는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한다. 우리는 Maya에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진실이 아니다. 당신은 진실 된 세상에 살고 있다 생각하는가? 정신 차려라.
by 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