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자유의지는 실재하는가? 


영상. 벤저민 리벳의 뇌파검사 실험


인류의 대다수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명제를 자명하게 받아들이며, 그에 반대되는 주장에 대해 감정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벤저민 리벳의 뇌파검사(=EEG)에 따르면 자유의지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인간은 생각을 통해 결정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나서 행동을 한다고 믿지만, 뇌파검사(=EEG)에 따르면, 실제 생각을 하기 300밀리 세컨드 전부터 뇌의 운동피질에서 반응이 먼저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무엇을 할지 이미 결정한다. 어찌 자유의지가 실재한다 할 수 있을까?

이는 경험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생각이라는 것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생각은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최초의 자극을 통제할 수 없다. 자극을 통제할 수 없는 시점에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학적, 경험적 토대 위에서, 우리는 어떠한 입장을 취하게 될까? 너무나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만약 ‘자유의지가 없다’는 명제를 수용한다면, 어차피 모든 것이 결정된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 그저 사태를 관망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게 될까? 

우주에서 혹은 무의식에서 출현하는 최초의 자극은 그 이후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서 선택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휴먼 디자인을 공부하고, 내적 주도권을 따르는 삶을 선택하지 않고, 저절로 'True-Self'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내가 이 글을 쓰기로 선택하지 않고, 저절로 이 글이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선택의 선행요인인 최초의 자극은 통제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고, 통제할 수 없는 선행요인은 향후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경생리학적으로 자극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뇌의 메커니즘과 자극에 대해 의식적 자각, 반추하는 과정을 거쳐 반응하는 뇌의 메커니즘은 다르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 인간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제임스 프로차스카의 변화모델에 따르면, 인간은 ‘무관심->심사숙고->준비->실행->유지->변화의 재순환->종료’의 과정을 거쳐 변화에 이른다. 자극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변화모델에서 ‘무관심’의 영역에 해당한다. 통제에서 벗어난 최초의 자극에 대해 깊은 자각이 일어날 경우, 인간은 ‘무관심’단계에서 벗어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며, 이는 곧 선택을 통한 삶의 변화 가능성을 뜻한다.  


따라서, 인간은 최초의 자극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최초의 자극에 대해 어떻게 자각하여 삶을 더욱 탁월하게 살 수 있는지에 관해 알아야 한다. 그러한 대안으로 휴먼 디자인을 들 수 있다. 휴먼 디자인에 따르면, 인간은 각각 자신만의 고유의 디자인(=기질)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삶을 살아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조건화되고, 다양한 기억들이 신피질에 축적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기질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인드 즉, 이성을 통해 삶을 통제하려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휴먼 디자인은 개인마다 고유의 내적 주도권 즉, 의사결정 방법이 다르며, 각자 자신만의 내적 주도권과 전략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질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질을 수용하지 않고, 마인드를 통해 살아갈 경우, 엄청난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디자인에 없는 것을 있게 할 수는 없으며, 조건화로 인하여 일관된 삶을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업 맥락(자유의지-자각-휴먼 디자인)이 나에겐 너무나 큰 해방감을 주었다. 부모님과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너무나 제한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트랙으로 인한 조건화, 자기 계발서가 말하는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조건화, 마인드로 채찍질하고 채찍질해도 생기지 않는 의지로 인한 자괴감, 수많은 깨달은 성인들이 말하는 깨달음에 대한 보편적인 맥락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오는 고통 등 결코 ‘자유의지가 없다’는 명제를 수용하기 전까지 그리고 '휴먼 디자인'을 통해 자신의 기질을 알기 전까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번 수업을 통해 교육이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 또한 체감했다. 나는 자유의지는 없다는 과학적 사실과 자각에 대한 넓은 이해가 없었을 때, 휴먼 디자인을 단순히 차트를 뽑아서 차트의 내용과 나의 인생 경험을 비교하는 측면에서 일치된다는 느낌을 통해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겪었던 문제는 휴먼 디자인을 지식 차원에서의 이해에서 깊은 내면으로의 수용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러나 Beyond University 수업을 통해 공부해 왔던, 언어와 학문의 본질과 근본적 한계, 칼 포퍼의 반증주의를 통한 과학적 태도와 그 한계, 다중우주에 기반한 트랜서핑과 영성과학을 통해 내면의 느낌을 통한 의사결정의 중요성, 자유의지가 없다는 맥락 등 이러한 수업 내용들이 하나로 엮이면서 깊은 차원에서 나의 디자인을 수용하게 되었다. 

과학적인 태도를 전제하면서, 감정적인 거부감 없이, 무언가를 수용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유로운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내면에서 떠올랐다. 나는 선택하지 않음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육과 공부라는 것이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번 글을 쓰면서도, 자유의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뇌 과학과 신경생리학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휴먼 디자인을 공부함에 있어 근본적인 학문적 배경들을 깊이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자유 의지가 없다’는 명제의 수용과 기질의 한계를 사랑하는 것은 삶을 더욱 탁월하고 균형있게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by Ocean

posted by BU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