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2

BU_class 2014. 4. 6. 22:02

과학을 진보시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파인만은 이에 답하기를 무지함의 인정과 끊임없는 의심이라고 말한다. 과학은 결코 결론을 미리 규정하지 않는다. 현재의 과학 이론들이 미래 어느 시점에 반증될 수 있음에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증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여러 번의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하고 어느 누가 어느 시점에 재실험과 재검토를 했을 때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학에서 반증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는 것은 문학과 예술 영역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과 달리 매우 엄격한 틀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즉, 과학은 완벽한 지식 체계가 아니지만 엄밀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심을 끊임없이 확인해나가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특징을 가진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다. 파인만이 책에서 말하는 종교는 사회적 관습에 따라 종교적 신념을 받아들이는 정도로 정의하는데 이는 표층 차원에 머무는 종교에 해당한다. 표층 종교는 형이상학적 원리와 도덕적 행위의 기준을 제시하고 사람을 선하게 감화시키는 기능을 하는데 이 3가지 측면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과학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종교의 형이상학 원리는 과학을 통해 비판되어 수정되어왔다. 현대 시대에도 인지과학이나 진화 생물학 등을 통해서 종교 지도자가 주장하는 종교의 형이상학 원리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지만, (물론 모든 과학적 진술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과학과 달리 반증 가능성에 열려있지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과학에 의해 문제가 되는 형이상학 원리가 도덕적 행위의 기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선교되는 것은 자연스레 사회와 인류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 심지어 도덕적 행위의 단계에 대한 심리적 연구결과를 통해 형이상학 원리와 밀접하게 연결된 도덕적 행위의 기준마저 위태로운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가 과연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종교는 더 이상 현실에 맞게 경전을 재해석해서 활자 근본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과학과 소통하여 옳지 않은 형이상학 원리와 도덕적 행위의 기준을 전폭 수정해야 한다. 종교는 심층적 차원으로 나아가야 하고, 언어와 과학으로 밝힐 수 없는 영역을 밝혀야 할 소명을 지녀야 한다. 에크하르트 톨레,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와 같은 성인들이 말하는 바대로 에고와의 동일시되지 않는 작은 Self가 아닌 큰 Self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과학은 지성의 산물이다. 종교는 지성으로 닿을 수 없는 인간 본성에 빛을 밝혀야 한다. 과학과 종교는 결코 대립되는 관계일 수 없다. 과학과 대립하는 종교는 엄밀히 말해서 표층 종교일 뿐이다. 무지함에 대한 수용과 자유로운 의심으로 끊임없이 반증 가능성에 열려있는 과학은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가져다준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파인만의 우려와 달리 과학과 종교는 사실 갈등할 필요가 없는 서로 다른 스펙트럼에 놓여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이성은 선사했다면 나는 그 이성이 그 어느 도그마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by Ocean

posted by BU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