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리얼리티 트랜서핑에 해당되는 글 6건
- 2014.06.20 우리의 현실이 취할 수 있는 모습의 엄청난 다양상
- 2014.04.23 팟캐스트 '과학이 빛나는 밤에' 시공간 결정론의 결정체 1~4편을 듣고
- 2014.04.14 책 '최고의 공부' 후기(Elizabeth)
- 2014.04.06 펜듈럼과 대학
- 2014.04.06 리얼리티 트랜서핑 '펜듈럼'
- 2014.04.06 균형력 _ '리얼리티 트랜서핑'
글
| 미시세계의 대상을 기술할 때 그것을 입자로 바라보기를 택한다면, 우리는 정명한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최초로 만들어냈던 것과 같은 원자 모형을 얻게 될 것이다. 이 모형에서는 태양계의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도는 것처럼 전자들이 원자핵 주위를 돈다. 만일 그것을 파동으로 바라보기를 택한다면, 원자는 물감이 번진 점처럼 보일 것이다. 이 두 모형은 각각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면서 현실이 취하는 각기 다른 측면들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도 역시 우리는 자기가 선택한 것을 얻는다.
| 기본적으로 현실 속의 어떤 현상도 기준점이 되어서 하나의 지식체계를 이루어낼 수 있고, 현상계 속에서 분명히 자신의 자리를 점하고 자신의 역할을 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늘 애써왔다. 그들은 사물의 특정한 성질을 연구함으로써 그것을 이루고자 했다. 어떤 특정한 자연 현상을 기술하고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많은 과학지식이 얻어졌다. 그리하여 지식의 여러분야가 생겨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분야들은 종종 서로 모순을 일으킨다.
| 우주의 본질은 하나이며 나누어져 있지 않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사람들이 그 한 측면을 제대로 연구하고 해명하기도 전에 이전 것과는 완전히 모순되는 다른 측면이 나타난다. 과학자들은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현실의 다양한 측면들을 통합시켜보려고 애쓰지만 그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과학지식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고 조화시켜줄 수 있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 우리의 현실이 취할 수 있는 모습의 엄청난 다양상 말이다. 이 비길 데 없이 무한한 가능태야말로 우리 우주의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본성이다.
- '리얼리티 트랜서핑' 가능태 모델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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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어떻게 과제를 시작해야 할까.. 이 과제를 하면서 솔직한 나의 심정은 막막하다. 과빛밤에서는 상대성이론에 대해 알기 쉽게 예를 들어 자세히 설명하였고, 나는 반복해서 듣고 설명을 따라 적으면서 대충은 상대성이론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나오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맥스웰 이론과 광속이 불변이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과 공간이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시공간이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것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이미 인쇄되어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것 사이의 추론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방송에서는 기차 한 칸 가운데에 사람이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서 빛을 쏘아 동시에 도달하는 사고실험을 통해 설명을 했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가장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빛이 운동하는 방향과 시간의 흐름 사이의 상관관계이다.
빛은 왼쪽 오른쪽뿐만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진행할 수 있다. 그 방향 중 어느 방향이 미래 방향이고 어느 방향이 과거 방향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지에서 오는 고통이 이런 것일까?...
상대성이론에 대해 전부 이해하지 못했지만, 상대성이론의 결론은 어쨌든 '과거, 현재, 미래가 이미 인쇄되어있는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가 이미 존재하는 것과 같이 '현실의 무한한 가능태들이 이미 어떠한 정보장 속에 이미 데이터로서 저장되어 있다'라는 '리얼리티 트랜서핑'의 '가능태 모델'과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이 두 개념은 '의식혁명'에서 '의식의 데이터 베이스'라는 개념과도 연결된다.
자세히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가 배우는 것들이 전부 하나로 연결되어 있거나 혹은 하나의 다른 모습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계속 공부하면서 그 하나가 무엇인지 알아가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이 BU가 추구하는 인생의 원리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공부해가는 과정에서 내가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면 다시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다.
by Elizabeth Taylo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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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동안 '최고의 공부'를 읽고 나의 생각을 쓰는 일을 미루고 미루고 또 미뤘다. 후기를 쓰는 일은 내가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의문들에 답해야 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너무나 불편했고 숨고 싶었다. 마음이 복잡하고 나의 모든 것들에 대해 또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쳤다. 단순히 내가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공부 방법으로 공부하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어서뿐만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만의 특별함은 무엇인지, 나는 왜 공부하고 있는지'와 같은 내적인 문제들이 머리를 들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듭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사랑함과 동시에 제대로 공부해 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최고의 공부'의 핵심 내용은 '내재적 동기로부터 유발된 진정한 공부를 하라.'이다. '내재적 동기'란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비롯되는 동기이고, 그것은 그 어떠한 동기보다 강력하고 위대한 힘을 갖는다.
사실 '내적 동기'에 따라 학습을 했던 창의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었음은 물론이고, 삶의 전체적인 부분에서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전혀 놀라울 것이 없다. 그들은 '리얼리티 트랜서핑'의 전제인 '인간의 기본적 본능'에 따라 충실히 살아갔을 뿐이다. 즉 '외부 동기'에 의해 떠밀려서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조종하고자 하는 욕구를 그대로 실현하며 살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올바른 '태도'와 진정성 있는 '생각'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노력'으로 인해 발생한 '외부의도'가 그들을 도와준 것이다.
그들이 '내적 동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 '메타인지적 사고' 였다. 그들은 내가 어떤 자질을 지니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 인생만의 특별한 경험은 무엇이고 그로부터 무엇이 나의 가치관을 형성했는지,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능력들을 통합할 수 있는지 등등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배우고 발견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이 가진 역량을 제대로 올바르게 쏟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창의적인 사람들은 생각하는 동안에 자신의 사고에 대해 생각하는 '메타인지적 사고'를 한다. '메타인지'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고정관념과 편견에 취우치지 않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공한 학생들은 공부하는 이유와 목적을 중시했다. 그들 대부분은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존재하는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며, 바람직한 자아상과 자신이 창조하고 싶은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또한 정의감과 연민을 길러 더 넓은 범위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의 가치관대로 움직였다. 즉 자신만의 문제에만 골몰한것이 아니라 더 넓은 사회와의 관계를 이해하며, 세상과의 상호 의존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인생의 목적을 찾았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불편했던 이유는 내가 공부하는 이유와 목적 때문이었다. 지금 현재 나는 나의 공부 목적과 이유를 '나 자신의 문제 해결'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말하는 훌륭한 학생들처럼 사회와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나의 문제에만 골몰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 이기적이고 성장할 가치가 없는 것 처럼 느껴졌다.
사실 나에게도 학창시절에 나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경험이 있었다. 바로 정치 교과서 맨 뒷부분에 있는 '헌법'이었다. 헌법 제10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 당시에는 이 부분을 읽으면 심장이 뛰었고, 평생 이 구절을 실현시키며 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자라나는 학생들을 나처럼 세상에 휘둘리지 않게 살 수 있도록 돕겠다는 생각으로 사회 선생님을 꿈꿨고 인권 변호사를 꿈꿨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나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튼튼한 기반 또한 없었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고 결국에는 나 자신에 대한 미움과 증오로 나를 가두곤했다. 나 자신에 대한 문제로 인해 스스로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공동체를 위한 일을 하고 학생들을 도와줄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러나 작년 여름 코치님의 강의를 듣고 추천해주신 책을 읽은 후로 나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NOT SELF로 조건화된 마음과 우유부단하고 어벙벙한 모습은 아직 여전하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가치관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나의 모든 것이 RESET되어 백지상태가 된 것이다. 나는 지금 백지상태에서 다시 새로운 것으로 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휴먼 디자인을 실험함으로써 나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계속 해나가야 하고,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원리를 배우고 기반을 쌓기 위해 BU를 통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온전히 허용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진 것처럼 나 자신이 아닌 공동체에 기여하겠다는 공부 목적을 세우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고, 실현할 수 있는 힘조차 없을 것이다.
실제로 최고의 학생들의 또 한가지 중요한 특징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용서하며 자신의 삶을 책임질 줄 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자기 연민이 뛰어난 최고의 학생들은 실패를 무시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힘차게 목표를 향해 달려나간다. 그들은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욕심은 부리지 않고 자신의 인생 목적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데서 큰 기쁨을 찾았다.
나또한 현재 나의 공부 목적이 나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나 자신을 미워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내가 나의 존재로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상태일 뿐이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만의 강점과 특별함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고 점차 단단하여 흔들리지 않게 되면 다시 예전처럼 공부 목적을 사회와의 관계 속으로 이동시키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BU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면서 코치님을 만났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다. 코치님께 나의 인생을 의존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코치님의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에서 내가 큰 힘을 얻고 있고, 내면 깊은 곳에서 따를만하다고 인정되는 스승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또한 내가 스스로 나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도록 깨끗한 정보와 깨우침을 주시는 코치님을 매우 존경한다. 코치님이 그동안 많은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코치님의 신념을 지켜왔기에 지금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코치님의 인생이 헛되지 않도록 나 또한 나의 인생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인생을 밝게 비춰주고 싶다.
앞으로 나의 책에 어떤 주제와 새로운 이야기들이 쓰일지 너무나 기대된다. 내가 나의 삶을 기대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앞으로도 우리의 삶은 두근거리고 즐거운 '놀이'와 같은 것임을 잊지 않고 힘 빼고 천천히 제대로 걸어갈 것이다.
by Elizabeth Taylo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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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펜듈럼은 사회 모든 곳에 영향을 끼친다. 그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국가에서부터 심지어는 박테리아군까지 모두 하나의 펜듈럼이다. 이 많은 집단 중 현재 BU 수업내용과 관련해서 집중해봐야 할 곳은 바로 '대학'이다. 펜듈럼이 대학을 어떤 방향으로 가게 했는지, 어떤 파괴적 영향을 줬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정말 펜듈럼은 도쿄대생들도 바보로 만들까? 일본의 지성,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의 저서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를 통해 일본의 대학교육이 산으로 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을 통해 대학이라는 기관의 펜듈럼이 생겨난 역사, 어떻게 그 펜듈럼이 유지되어 왔는지, 펜듈럼이 대학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등을 알 수 있다.(우리나라 대학은 일본 대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도쿄대 이야기는 곧 우리나라 대학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의 대학은 본래 유럽의 명문 대학과는 달리 자치적 조직체가 아니라 국가의 여러 기관들의 이해가 얽혀서 만들어졌다. 당시의 정황 상 대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교양 인재를 육성하는 게 아니라 나라 발전에 헌신할 인재 육성에 초점이 맞춰지게 됐다. 즉 설립 역사에서부터 대학은 정치적 목적과 긴밀했다. 현 제도에 충실한 엘리트를 양성하는 것. 목적이 이러하니 일본의 교육제도는 자연스레 획일적이고 중앙통제적으로 흘러갔다. 이로써 대학에서는 졸업 후 바로 국가와 기업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전문지식, 실용적 학문만을 가르쳤으며 우주, 인간, 사회에 대한 원리를 알 수 있는 학문들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게 되었다. 애초에 대학은 진리 추구가 아닌 이익, 권력 추구가 목적이었던 것이다.
대학이라는 펜듈럼이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더 많은 지지자들을 유혹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입시제도, 학벌, 학점, 학파, 취업 등등. 이런 유혹을 통해 교육부, 입시생들, 사교육 시장, 교수 집단이라는 기존의 펜듈럼을 강력히 지지하는 새끼 펜듈럼이 생겨났다. 이것들은 대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관심 없어 보인다. 심지어 왜 입시제도가 존재하는지, 왜 대학에 가야하고, 왜 대학을 좋은 데로 보내야 하는지, 왜 진리를 가르쳐야 하는지 물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그저 펜듈럼이 만들어낸 법칙대로 행동한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고 그것이 최선이 아님을 의식적으로 인지할지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 채 펜듈럼이 흘러가는 대로 떠밀려갈 뿐이다.(이 점은 자유의지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어보인다.)
펜듈럼의 무서운 점은 자기 지지자들과 다른 펜듈럼 지지자 그룹이 대립하도록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는 대학을 매우 정치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대학의 정치화는 학생들이 폭넓은 교양을 쌓는 걸 막고 복잡계 이론, 양자정보이론, 주역 등과 같은 원리적인 학문을 배우지 못하게 한다. 즉 '도쿄대생들'을 바보로 만든다. 예를 들면, 대입시험에서 이과, 문과생들은 각각 문과, 이과 과목수를 매우 적게 하거나 중학수준으로 시험치 도록 하는데 국립대학이 그렇게 시험을 내는 이유가,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이 모두 사립대학에 가기 때문이다. 또한 교양학부에는 전공학부와는 달리 독자적 인사권이 주어지지 않는 것, 당연히 접해야 하는 새로운 학문의 유입이 기존 학파의 텃세로 배척당하는 경우도 펜듈럼이 만든 대립과 관련이 있다. 이런 정치적인 이유들로 꼭 배워야 할 걸 배우지 못하고 바보가 되는 것이다.
펜듈럼의 또 다른 무서운 점은, 펜듈럼은 사람의 약점(감정)을 건드린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취업을 못할 것 같은 두려움, 가장 인기 있고 유망한 과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인해 진짜 인생의 원리를 제시하는 학문을 접하지 못하고 전문 지식만을 수집하게 된다. 교수도 마찬가지다. 나만 옳다는 허영심, 자존심 때문에 학생들을 진리로 안내해야 하는 임무를 망각한 채 밥그릇 싸움만 하게 된다. 펜듈럼은 진실, 본질로 멀어지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파괴적이다.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펜듈럼의 규칙에 충실해서 살림살이가 나아졌는가? 펜듈럼은 지지자 개개인의 운명엔 관심이 없다. 오직 더 많은 에너지를 모으는 게 목적일 뿐이다.
펜듈럼의 존재를 인정하고, 게임 속에 빠지지 않고 바깥에서 관조하면 펜듈럼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의 경우, 대학 펜듈럼이 낳은 입시제도 펜듈럼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희생자였다. 그것을 벗어나고자 했을 땐 괴롭힘도 많이 당했다. 하지만 코치님의 강의 및 독서를 통해 어느 정도 펜듈럼에 대해 자각하고 적어도 대학 펜듈럼 속에는 더 이상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펜듈럼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지게 되면 정보의 미개척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BU에서 배우는 내용이 바로 그런 지식이지 않을까 싶다. 펜듈럼은 오직 다른 펜듈럼으로 물리칠 수 있다. 나는 '다른 펜듈럼'으로 BU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앞으로 이 BU 펜듈럼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신의 목적에 맞게, 지혜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by Aud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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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펜듈럼'은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 한 곳으로 맞춰 모아져서 생겨나는 에너지에 기반을 둔 정보체다. 생소한 언어로 표현했지만 '펜듈럼'이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고정된 방식들인 것이다. 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방사할 수 있는 모든 물질들은 '펜듈럼'을 생성할 수 있으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펜듈럼'으로 가득 차 있다. 파괴적인 '펜듈럼'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행동과 상황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의식적으로 이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행복의 인생 트랙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그저 에너지를 내주는 꼴이 된다.
'펜듈럼'의 목적은 더 많은 지지자들을 끌어들이고, 그 지지자들로부터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므로 지지자들 개인의 행복은 바라지 않는다. '펜듈럼'은 우리의 이목을 끌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통해서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소외된다는 불안감을 주는 방식 등으로 우리에게 자신들의 방식을 주입한다.
그렇게 주입된 지지자들은 '펜듈럼'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면서 살만한 환경을 제공받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에너지를 주다가 '펜듈럼'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생각을 돌리면, 아무리 그 '펜듈럼'에서 특정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지지자일지라도 머지않아 밀려나도 소외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펜듈럼'에 발을 들이면 죽을 때까지 그 '펜듈럼'에서 살던가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고 빠져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펜듈럼'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펜듈럼'에 대해서 자꾸 부정적인 생각을 하거나 에너지를 보내게 되면, 그 '펜듈럼'을 우리의 인생 트랙으로 끌어드리는 일이 된다. '펜듈럼'은 그 고유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고, 그 주파수에 공명되지 않으면 에너지를 흡수할 수 없기 때문에, 당장 실행할 수 없고 수용도 잘 안되는 내용이지만, 우리를 관통하려고 하는 '펜듈럼'들을 우리는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함으로써 대처하거나 펜듈럼의 게임에 참여하는 척하면서 관조적인 자세로, 또 제3자의 느낌으로 펜듈럼의 세계가 돌아가는 것을 보아야 한다.
지속적인 알아차림과 훈련을 통해서 펜듈럼을 무시하고 관조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남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by T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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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지나친 노력은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어떤 대상에 지나치게 큰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할 경우, 잉여 포텐셜이 만들어진다. 잉여 포텐셜이 나타나면 에너지가 불균형해져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균형력’이란 법칙이 일어나 이 잉여 포텐셜을 제거한다. 이 세상은 전체가 ‘펜듈럼의 집합’이라 볼 수 있는데, 이 복잡한 전체 시스템을 지배하는 법칙이 균형력이다. 균형력은 포텐셜을 만들어낸 의도와 반대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균형력으로 잉여 포텐셜을 없애는 것보다 나 스스로 없애는 편이 좋다. 중대한 의미를 부여받은 어떤 평가가 현실을 크게 왜곡시키고 있을 때 잉여 포텐셜의 양이 더 커진다. 평가의 오류, 그 자체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 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첫 번째로, ‘불만족’이다. 스스로 자기반성하여 결점과 약점을 알아차리는 것은 좋지만 그런 결점들이 마음을 괴롭혀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면 잉여 포텐셜이 생겨난다. 개인적 성취나 자질에 대해 불만을 품기도 하지만, 자신의 결점과 약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자신도 불만스러워한다.
사소한 일에도 불만을 토하는 습관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가로막고, 소소하고 다양한 일들에서 끊임없이 작은 기쁨을 느끼는 습관은 원하는 것을 얻게 해준다. 모든 불행은 불행을 가장한 축복이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인 것에서 좋은 점을 찾아낸다면 큰 노력을 들지 않고도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또 힘들 때, 어떠한 기쁨도 느끼지 못할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생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므로 낡은 습관을 새로운 습관으로 대처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작심 3일로 끝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작심 3일로 여러 번이 되면 3일로 끝나지 않는다. 각오를 자주 상기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고, 습관을 바꾸는 ‘행’을 해야 한다.
두 번째는 무언가 다른 것과 ‘대비’되고 ‘비교’될 때다.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도 여기에 포함된다. 모든 갈등은 비교와 대립에서 온다. 자만심으로 우쭐 거리는 사람이 약점과 결점이나 소박한 성취에 대해 업신여기는 태도를 가질 때 잉여 포텐셜이 만들어진다. 특히 상대방을 경멸하는 비판은 가장 강력하다. 비판하는 대상이 우리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을 때, 우리는 그에게 비난을 할 권리가 없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둘 다 아주 전형적인 의존적 관계이다. 자신은 다른 사람과 비교된다. 자신을 주변과 비교할 때, 자신의 잘난 점을 입증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래서 얻는 제 잘난 기분은 환상이다. 그와 반대로 자기완성은 진정한 미덕을 길러주고 에너지를 헛되어 낭비시키지 않는다. 목표가 미덕을 얻는 것이라면 그 의도는 그 사람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미덕을 스스로 과소평가하는 것은 우월감 콤플렉스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플러스 잉여 포텐셜을 창조하든 마이너스 잉여 포텐셜을 창조하든 에너지 차원에서는 결국 똑같다. 결점과 싸우거나 숨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겨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는 게 중요하다.
세 번째는 ‘욕망’이다. 어떤 것을 너무나 원하는 나머지 그것을 얻기 위해서 가진 것을 모두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잉여 포텐셜이 만들어지고, 균형은 깨어진다. 욕망은 세 가지 형태로 구별할 수 있는데 첫째, 강한 욕망이 목적물을 가지고자 하는 단호한 결심과 행동으로 바뀌는 경우와 둘째, 소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욕망, 그리고 셋째, 강한 욕망이 목적물에 대한 의존적 관계로 변하는 경우이다. 원하는 대상에 막대한 중요성을 부여하면 저절로 의존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욕망이 의존으로 변질되면 내면 깊은 곳에서 욕망이 성취되는 것을 믿지 않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반대로 된다. 예를 들어 뭔가를 회피하려고 하는 강한 욕망이 그 회피하려는 것과 마주칠 가능성을 높게 만들어준다.
소망은 오직 강한 욕망이 목적물을 가지고자 하는 단호한 결심과 행동으로 바뀌는 경우에서만 이루어진다. 그때의 욕망은 잉여 포텐셜 없이 순수한 의도로 변형된다. 순수한 의도란 과대평가 없는 상태에서 욕망과 행동이 하나로 결합된 것이다. 바라는 대상이 현실로 실현되는 인생 트랙으로 옮겨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순수한 의도’의 ‘에너지’뿐이다.
네 번째, ‘죄책감’이다.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잉여 포텐셜이다. ‘올바른’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 때는 곱절의 잉여 포텐셜이 창조된다.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에 책임을 느끼는 근거 없는 죄책감은 가장 큰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 낸다. 그 죄책감의 원인은 스스로 지어낸 것이다. 죄책감은 항상 처벌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다. 잠재의식은 그 시나리오를 따름으로써 죄의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균형력이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자인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뿌리 깊숙이 그 사상이 묻혀있다. 그래서 그 죄에 대해 처벌을 받는 것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동의한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그들에게 자신보다 우월할 수 있는 권리를 양도한다. 그들이 자신을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만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자신의 양심으로써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지, 당신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죄책감의 잉여 포텐셜을 해소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은 ‘용서를 비는 것이다’. 실수 인정하기, 죄 사함을 비는 기도, 신앙고백, 고해성사 등 이 모두가 죄책감의 잉여 포텐셜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이다. 자신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우리는 스스로가 내린 유죄판결에서 해방된다. 또 하나, 자신의 잠재의식에 숨어있는 처벌에 대한 생각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개인의 진정한 힘은 죄책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다섯 번째, ‘완벽함’이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많은 관념이 머릿속에 심어진다. 그 관념들은 뿌리 깊숙한 곳에 묻혀 자기 인격의 일부로 만들어버린다.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에 따라서는 강박증이 될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의 삶은 끊임없는 투쟁이다. 싸우는 대상은 균형력이다.
물론 모든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려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면 균형력이 나타난다. 이것은 피드백 순환을 일으키기 때문에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점점 더 심해진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나아가서 편집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문제는 완벽주의자는 자신의 역할에 너무 깊이 빠져든 나머지, 자기는 흠 없는 사람이며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은 옳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항상 옳다는 느낌이 그의 행동을 정당화할 것이고, 세상을 올바른 길로 안내하고자 하는 의로운 욕망이 충분한 동기를 부여해줄 것이다. 그 순간부터 이 ‘운명의 결정자’는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고 처벌할 권리를 자신에게 부여한다. 그 순간 가장 강력한 잉여 포텐셜이 형성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점을 숨기기 위해, 없애기 위해 싸우는 데 노력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이해하고, 수용하여 자신을 용서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하면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내는데 사용되는 에너지를 오로지 장점을 키우는데 사용될 것이다. 그리고 인생 트랙도 좋은 쪽으로 향할 것이다.
세상과 조화롭게 지내고 펜듈럼에게서 벗어나려면 과도한 중요성을 감소시킬 필요가 있다. 늘 자신과 주변 세상에 대해 얼마만큼의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붙잡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그것이 어디까지 끌고 가도록 허용할 것인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일만 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모든 운명은 ‘선택’이다. 자신만의 길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잉여 포텐셜을 유지하려는 막대한 노력으로부터 해방되면 균형력의 영향에서도 해방된다. 펜듈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직장에서도, 무엇을 함에서도 훨씬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문제에서도 벗어 날 수 있다.
소망을 성취하는 길에서 유일한 장애물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중요성이다. 내적, 외적 중요성을 거부함으로써 선택의 자유를 얻는다.
by Ai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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