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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 해당되는 글 42건
- 2014.08.05 [BU_podcast] 10화. '이분법'이라는 환상을 해체하기 (+독일에서 온 사연)
- 2014.07.03 '인식 틀' 만들기의 중요성 _ 우리도 학자의 머리를 갖출 수 있다! 1
- 2014.07.02 조승연 '생각 기술' 中 1
- 2014.07.01 '삼각대 공부법'에 대한 통찰
- 2014.06.30 '공리'를 알면 학문의 실체가 보인다.
- 2014.06.28 나는 왜 공부해야 하는가
- 2014.06.23 [BU_podcast] 6화. 학문의 원리와 구조 3편 _ '모순'은 자작극이다.(모순이라는 모순)
- 2014.06.20 우리의 현실이 취할 수 있는 모습의 엄청난 다양상
글
Beyond University 팟캐스트 업로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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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눌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까요?
'더운 것과 '추운 것'의 기준을 정확히 설정할 수 있나요?
이번 10화에서는 '이원성'을 절대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우리의 기존 신념과 가치관에 대해서 건드려봅니다.
삶 그리고 학문은 통합체계이기 때문에 나누고 쪼개서는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대립'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실체! 궁금하지 않나요?ㅎㅎ
"우리나라 대학들을 대신해 '단절된 조각'들을 맞춰갑니다."
'진짜 공부', '진짜 인생’을 위한 위키리크스, Beyond University!
* Beyond University 팟캐스트는 매주 '월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 'Podcast'와 '팟빵' 앱에서 Beyond University를 검색하시면 해당 내용을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or
http://www.podbbang.com/ch/7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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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학자들은 그동안 세상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한 집념으로 여러 학문들을 만들어내고, 발전시켜서 궁극의 진리에 도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불완전성 정리와 같은 이론들과 뇌 과학, 양자물리학, 양자정보이론 등 첨단 과학 이론을 통해 그 시도에는 절대적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한계를 발견함으로써 인간이 어떤 틀(한계)을 가지고 우주의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였는지, 궁극적으로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그 속에서 학문의 경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인식해, 오히려 학문은 한계적으로 허용된 틀 안에서 최대치를 활용함으로써 더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마찬가지로, 한 개인이 어떤 학문의 모든 내용을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는 '자신만의 사고의 틀'을 인식하고, 발전시켜 학문의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틀에 최대한 가깝게 사고의 틀을 확장시켜나갈 필요가 있다. 학문 속에서 자신의 인식 틀이 지닌 한계점을 알고, 이 속에 담은 내용들이 무엇이고, 담지 못한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 것, 이것이 곧 학문을 공부하는 과정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언가를 학습함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메타인지적인 눈을 갖게 되어 구조적이고, 통합적이며 효율적인 접근이 가능해진다.
어떤 꼭지점이든 세 개만 찍으면 인식의 틀을 우선 형성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그 시작이 되는 꼭지점들을 세계적으로,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인증된 책을 통해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학문을 보다 원리적으로 구조적으로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으로 삼각형을 형성하는 과정에서는 석학들의 사고를 그대로 흡수할 수밖에 없겠지만, 여기에 다른 책과 지식을 더하고, 자기화하는 과정을 더한다면 삼각형을 독창적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도 텍스트를 넘어 컨텍스트를 볼 수 있는 사고력을 조금씩 기를 수 있다. 결국은 고등학문을 자기 힘으로 학습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식 틀'을 갖추는 것의 가장 큰 강점이다.
현재 우리는 BU수업과 팟캐스트를 통해 '학문의 원리와 구조'에 대한 삼각형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선 '철학적 사고로 배우는 과학의 원리', '불완전성 정리 이론', '양자 물리학 주요 내용' 등이 주요 꼭지점을 이뤄 첫 삼각형을 형성했고, 그 안에
* 모든 학문은 공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절대로 진리를 드러낼 수 없다.
* 모든 학문은 다면적인 세계의 한 측면만을 보여줄 뿐이다.
* 도구주의적 관점으로 학문을 볼 필요가 있다.
등의 매우 가치있고, 힘 있는 정보를 담아낼 수 있었다. 여기에 양자정보이론이나 주역과 같은 학문을 더해 삼각형을 넓혀간다면 학문의 원리와 구조를 바라보는 시야가 더 넓고 깊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 삼각형이 불완전하게나마 우선 장착되고 나니, 다른 책을 읽으면서, 지식 검색을 하면서,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이와 비슷한 맥락이 나오면 자연스레 바로 발견이 됐고, 이를 삼각형 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게 됐다. 이 경험을 통해, 공부와 삶에 있어서 좋은 맥락을 가지고 삼각형을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학문 자체의 본성에 대한 것부터 삼각형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앞으로 접할 학문들이 매우 고맥락적이고, 압축적이고, 컨텍스트를 통해 접근하지 못하면 그저 조각 모음에 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처음 공부할 때부터 이 작업에 신경써야 한다는 것 또한 느꼈다. 이것이 사람이들이 학문에 더 접근하기 힘들어하는 이유일 것이다.
'학문의 원리와 구조' 뿐만 아니라 앞으로 '철학사', '과학사'에 대해서도 세계적인 석학들의 책을 통해서 틀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패션의 역사를 깊이 공부하고, 그 흐름에서 영감을 얻고, 트렌드를 만들어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문을 깊이 공부하기 위해선 '인간이 그동안 어떤 사고를 해왔는지'에 대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장 근본적인, 인식론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과 과학의 역사를 훑어야 하고, 이걸 인식 틀의 토대로 만들어 많은 지식들을 연결하는 링크 포인트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떤 사고가 순환해왔는지 그 구조를 알고, 수많은 관점들을 접해 사고 확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아마도 BU수업에서 학문의 원리와 구조에 대한 학습이 끝나면 이 작업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학문하기 전 사고의 틀을 잡고 이를 인식하며 확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수업을 통해, 그리고 실제로 그 작업을 해보면서 정말 크게 실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기존의 교육 기관들은 이 중요한 사실을 왜 '당연하게' 가르쳐주지 않을까, 그리고 심지어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왜 뺏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치 코끼리의 전체적인 모습을 익히는 것이 삼각형 틀을 잡는 것이라고 보면, 다른 내용, 예를 들어 강아지를 처음 접했을 때 자연스레 전체적인 모습을 보려고 하며, '네 발로 다닌다.', '꼬리가 있다' 그리고 '온몸에 털이 있고, 없다' 등 공통점과 차별점을 빠르게 인지하고, 또 그런 데이터가 쌓일수록 더 크게 분류할 수 있고, 특정 구조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을 하게 되는데, 코끼리의 다리만 보여주고, 강아지의 귀만 보여주는 식의 학습은 그저 단순한 암기 거리를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스레 사고력이 늘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며, 학습에 대한 흥미 또한 떨어지게 된다.
책 '생각 기술'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공부가 가정을 증명하는 방법일 뿐이고, 어떤 이론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학생들에게서 숨길 필요가 없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어린 학생들에게 일찌감치 위대한 철학자, 역사학자, 정치학자, 수학자 등의 이론을 직접 읽도록 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그 이론을 비평하고 자기의 이론을 써나가도록 지도했다. 그 결과 이 당시의 어린이들은 지금의 어린이들보다 놀랄 만큼 방대한 지식을 가졌으며 벌써 10대 중반에 자기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개발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20대가 되면 당당한 학자로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미스터 폴이 항상 강조하는 대로 나이 상관없이 제대로된 절차와 방법, 그리고 올바른 태도를 통해 학습한다면 누구나 고등학문을 익힐 수 있다. 하지만 교수님들은 그럴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학문의 본질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은채 고등학문을 철옹성으로 보게 만들고 있다. 이점은 언젠가 꼭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뇌 과학에 따르면 20대까지 뇌의 가역성이 풍부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뇌에 감수성기라는 게 있는데 이 시기에 뇌에 어떤 입력이 있는가에 따라서 그 기능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나갈지 결정된다. 우리는 이때 고등학문을 올바르게 접할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스로 학습이 가능하도록 균형 잡힌 인식의 틀을 만드는 작업를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최소 3년을 내다보고 말이다. 공부의 '공工'은 '장인 공'자이다. 장인처럼 열심히 틀을 만드는 것!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진 지금! 제대로 공부해서 평생학습할 기반을 닦아놓아야 한다.
by Aud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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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모든 공부가 가정을 증명하는 방법일 뿐이고, 어떤 이론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학생들에게서 숨길 필요가 없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어린 학생들에게 일찌감치 위대한 철학자, 역사학자, 정치학자, 수학자 등의 이론을 직접 읽도록 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그 이론을 비평하고 자기의 이론을 써나가도록 지도했다.
그 결과 이 당시의 어린이들은 지금의 어린이들보다 놀랄 만큼 방대한 지식을 가졌으며 벌써 10대 중반에 자기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개발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20대가 되면 당당한 학자로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 조승연 '생각 기술'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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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공부(독서)를 하는 것은 대양 한가운데에서 항해하는 것과 같다. 우선은 '지도'를 통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현재 내가 어느 위치에 있고 또한 목표지점은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그림 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과 지도를 통해 세계의 전체적인 모습을 인식하고 뚜렷하게 목표지점으로 항해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항해에서의 '지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 삼각 공부법에서는 '학문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통한 전체적인 '학문의 틀'인 '사각형'이다. 사각형은 경영학, 심리학, 물리학, 철학 등등처럼 우리가 인위적으로 구분한 한 학문 체계를 의미할 수도 있고 학문이 구분되기 전의 전체적인 학문의 틀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한편 학문의 본질을 공부해보면, 인류가 인위적으로 구분해 놓은 학문은 사실은 전체적인 '하나'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학문은 절대적으로 객관적이지 않고 '상호 주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학문의 본질'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사각형이 의미하는 바는 각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사각형은 '지도'의 역할을 하므로, 학문의 틀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왜 학문을 하는가,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나의 학문하는 올바른 태도에 대한 인식과 더 나아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바탕 공부'를 의미하기도 한다. 공부를 하기 전에 이러한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스스로 단단한 기반을 형성하지 않으면, 공부하는 도중 길을 잃고 방황할 수 있다.
항해를 할 때에는 바람을 이용하는 법, 배가 움직이는 원리, 별자리를 읽는 법, 해양의 기후 등등 여러 가지 기술정보와 지식이 필요하다. 삼각 공부법에서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그림의 '삼각형이다.
바탕인 '사각형'안에 '삼각형'을 형성하는 방법은 내가 공부하는 분야의 '대가'들의 책을 세 권 이상 읽으면 된다. 세명 이상의 대가들은 가능하면 다른 시대를 살았고 다른 문화권에 있으며 한 학문에 대한 상호 배타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들의 책을 읽음으로써 학문에 대한 '삼각형'모양의 시각을 형성할 수 있다.
왜 세계적 석학들의 책을 읽어야 하는가? 아무리 대가라 하더라도 그들의 학문은 본질적으로 절대적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옳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즉 아무리 위대한 학자라 하더라고 모든 이론과 학문은 '정확성'의 정도가 각기 다른 '주장'과 '신념'체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누구보다 세계를 유용하고 실용적으로 현실과 잘 들어맞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절대적인 신뢰성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안전함'을 부여한다.
중요한 것은 처음 형성한 삼각형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 개인의 각 이해력과 지력에 따라 삼각형의 크기가 천차만별로 다를 테지만, 위대한 석학들의 이론을 완전무결하다고 긍정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과 학문의 불완전성에 대한 인식이 존재한다면 점점 학문을 공부함으로써 얼마든지 삼각형의 크기를 넓혀갈 수 있다. 공부하는 학생에게 요구되는 것은 삼각형의 크기가 가능하면 넓어져 전체 사각형을 포괄할 수 있도록 '열린 태도'로 공부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사각형을 넓게 포괄하는 삼각형을 형성하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대가들의 책을 무작정 읽는다고 해서 삼각형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자신의 '이해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지식으로 소화해야 하는데 대가들의 책을 제대로 소화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삼각형'이 유용한 것은 '폐쇄 회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점'을 알 수 있다. 한계점이 의미하는 바는 자신이 공부한 것의 정확한 위치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시야를 더 넓혀갈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성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면 현재 공부하는 것에 지나치게 매몰되거나 반대로 자신이 망망대해에 있다고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학문의 바탕인 '사각형'을 자신 스스로 세우지 못하고, 무엇을 공부하는지에 대한 '삼각형'을 인식하지 못하면 사각형에서 삼각형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즉 자신의 '한계점'을 인식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각형과 삼각형이 의미하는 바를 스스로 제대로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문의 틀인 사각형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마다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각형을 '벗어난' 삼각형이 존재할 수 있다. 사각형을 벗어난 삼각형이 의미하는 바를 경영학이라는 학문으로 예를 들자면, 경영학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경영학이 발전할 즉 사각형이 넓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렇게 삼각형 학습(독서)법을 통해 학문의 본질, 학문의 목적, 자신의 위치, 앞으로의 방향, 올바른 학문하는 태도 등등 학문을 하는 기본적인 바탕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학습도구이다.
by Elizabeth Taylo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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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공리'를 알면 학문의 실체가 보인다.
'철학적 사고로 배우는 과학의 원리' 후기
고대 그리스 이래 '수학'이라는 학문은 한 마디로 '완벽한 것', '영원불멸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완벽할 거라 기대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수학자들은 자체적으로 완전한 수학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고, 그것의 기준들과 방법들을 다른 지식 영역에도 적용하려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인식론자들은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수학도 어딘가에서부터 출발한 것이고, 그 출발점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규칙에 불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즉 수학의 확실성을 의심한 것이다.
"수학은 과연 어디서부터 출발하는가?"
"어쩌면 우연적인 요소들이나, 참인지도 확인되지 않은 직관적인 사실들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우리의 몸이 단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된 것처럼 수학 또한 단 하나의 명제로 시작했다. 그 '공리'가 무엇인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실체를 알면 적잖이 놀랄 수 있다. 공리는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할 수 없지만 올바른 것으로 가정하자는 암묵적인 이해를 기반으로 한 '약속'인 것이다. 그저 직관적인 앎을 토대로 '그냥' 자명해 보이니까 공리로 정하자고 한 것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만들어진 이후, 수학자들은 위의 사실을 인지하며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가 다른 곳에도 적용이 된 건 순전히 관습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때문에 자유롭게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공리를 선택해 또 다른 수학 이론을 구축해나갈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수학자 힐베르트는 그렇다면, 어떤 공리를 정해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수학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공리의 수를 최대한 줄여 직관에 의지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최대한의 확실성을 확보할 수 있는,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명제를 공리로 설정해 완전한 체계를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최소한의' 공리, 그리고 '모순이 없는' 공리를 토대로 어떠한 수학적 사실이든 진위를 판정할 수 있는 수학 체계를 발견해보자!" 이것이 바로 힐베르트 계획의 핵심 목표였다.
그는 첫째로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고, 둘째로 어떤 것이든 참, 거짓을 판별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이론의 첫 시작이 직관적인 앎에 근거한 약속된 공리여도 온전한 수학 체계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힐베르트는 수학적으로 핵심 이슈인 23개의 문제를 제시하고, 앞으로 만들 궁극의 수학 체계로 이 문제들의 참, 거짓을 가리고 풀어가자고 자신 있게 말했다.
과연 힐베르트가 꿈꾸는 완전한 수학 체계란 존재하는 것일까? 이 원대한 꿈은 젊은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인 괴델에 의해 허망한 꿈으로 전락하게 된다.
당시 23개의 문제 중 첫 번째 문제는 칸토어가 주장한, '자연수와 실수 사이의 무한집합은 없다'는 '연속체가설'이었는데, 괴델은 1940년 이 가설이 현재의 집합론 안에서는 거짓이라고 판정할 수 없음을 증명해 보였다. 게다가 1960년 수학자인 코헨 또한 이 가설이 참이라고 판정할 수 없음을 증명했다. 결국 이 두 발견으로 인해 '연속체가설'이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는 가설임이 드러나버린 것이다. 결국 첫 번째 문제부터 어떠한 수학 체계 안에서 그 공리들이 모순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그 체계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음을 밝혀져 힐베르트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괴델은 제1불완전성 정리에서 특정 명제가 진실이든, 거짓이든 모순이 생겨버리는 '자기 언급의 패러독스'가 수학에서도 발견됨을 발견했다.
"수학에서 증명도 반증도 불가능한 명제가 반드시 포함된다."(제1정리)
아무리 적절해 보이는 공리로부터 이론을 구축한다 한들 반드시 참이라고도, 거짓이라고도 할 수 없는 명제를 반드시 포함하게 된다. 정말 그렇다면 애초에 수학은 진위 판명을 할 수 없는, 불완전한 도구였던 것이다.
제1정리의 내용으로부터 제2정리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수학 이론에서 증명 불가능한 명제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아래의 사실을 나타낸다.
"그 이론 체계에 모순이 없다고 해도 스스로의 체계가 옳다고 증명하는 것을 그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다."(제2정리)
이건 마치 검은 까마귀만을 여태껏 봐와서 '이 세상에는 검지 않은 까마귀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당장이라도 흰색 까마귀가 등장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모순을 찾지 않았다고 해서 모순이 없다고 확실할 수는 없다. 정리하면, 수학 내부에서 모순이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수학의 완전성을 결코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동안의 수학자들의 깊은 신앙이었던 '인간은 이성을 이용해 어떤 명제든 참인지, 거짓인지 반드시 알아낼 수 있다'는 환상은 산산조각 나게 된다. 인간 이성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수학'이라는 가장 단단해보이는 학문을 대상으로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이게 수학의 기본 틀을 무너뜨려 수학을 붕괴시킨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수학의 구조와 한계를 드러내 문제의 본질에 직면함으로써 오히려 더 진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수학 뿐만 아니라 다른 일반적인 학문들에도 적용되는 내용이다. 모든 학문은 공리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그동안 학자들이 제대로 보지 못했던 학문의 본질을 마주하게 됐다. 그래서 그들이 얻게 된 결론이 무엇일까? 학문의 완성도는 공리의 참, 거짓 여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특정 공리를 기반으로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는 결과들을 도출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학문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학문을 발전시키고, 이론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무시할 수 없는 학문의 '유용성' 때문이다. 학문은 절대로 진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지만, 일상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실험하고, 검증하고 연구해 세상의 현상들을 잘 설명하고 풀이해준다. 우리는 학문을 일종의 도구로 여기고 최대한의 유용성을 뽑아낼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학문을 제대로 하기 전에 이런 인식론적인 공부가 선행되야 학문의 타당성과 유용성을 잘 분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학문하는 진정한 태도를 갖출 수 있게 된다. 학문의 원리, 구조, 한계를 알고 특정 학문에 필요 이상의 중요성을 두지 않고, 또 세상을 각자의 입장에서 표현하는 학문들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 학문의 실체를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이성과 학문을 통해 굴러가는 이 세상 위에 올바르게 서있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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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나는 왜 공부해야 하는가
'철학적 사고로 배우는 과학의 원리' (학문의 원리, p.16-39)
'학문'이라는 것은 '무'에서 세워지지 않는다. '공리'에서 출발한다. '공리'를 토대로 어떤 사실들이 '논리적'으로 차곡차곡 정리되고 쌓여 형성된 것이 학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공부해 왔다. 하지만 이 공리가 '참'인가, '진실'인가하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보려는 시도는 허락되지도 않는다. '논리적'이지 않은 말을 하거나, '자명한' 공리에 대해 '왜 그런가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은 이상하다거나 바보로 취급이 되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학자들은 처음엔 그런 이상한 바보들이었다.
너무도 자명하다고 여겨져서 이를 '왜 그런데?'라고 물어보면 바보 취급을 당할 수도 있었던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를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가 뒤집고 새로운 공리를 세워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었다. 가우스에 의해 뒤집어지긴 했지만, 유클리드 역시 기존의 공리를 뒤엎어서 수학이라는 학문을 더 넓힌 사람이다. 그 위대하다는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고집을 부리며 무시하고 경멸하기까지 했던 '무리수'의 존재를 보란 듯이 증명해내었는데, '혼란의 수'인 무리수는 원주율 '파이'처럼, 자연의 미묘한 법칙을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공리'라는 것은 너무 자명하다고 여겨져서 증명되지 않은 어떤 법칙, 약속이다. 어떤 위대한 권위자가 '이건 이렇다고 해!'라고 우기면 그것이 공리가 되기도 한다. '논리적'이라는 말조차도 차근차근, 바보가 되어 따져 보면 그냥 "일단 이렇다고 해두자"라는 약속일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논리적이지 않은 '모순'도 사실은 그냥 '이런 건 모순이라고 하자'라는 약속이다. '공리'도, '논리적이다'라는 것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그 실체는 없다. 각 공리를 보고 우리가 만들어낸 관념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계'에만 둥둥 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학문'이라는 것은 그냥 학자들이 약속한 것일 뿐이라는데, 그것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데, 그렇다면 왜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과 정리가 등장하고, 우리는 왜 그것을 공부하는 것인가. 뭘 어쩌라는 말인가! 학문체계로 절대적인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데 다른 동물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말고 먹고 자는 것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공리'라는 토대 위에 '논리적'으로 차곡차곡 세워진 증명들이 정말 신비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공리가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라는 것은, 그것을 부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유연해져도 된다는, 자유를 가져도 된다는 따뜻한 말이다. 새로운 공리가 만들어졌어도, 유클리드 기하학은 그 자체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기하학을 이용해 '또 다른' 측면에서 자연을 좀 더 가까이 설명하는 학문이 되는 것이다.
학문의 구조에 더 깊숙하게 들어가서, 아주 근본적으로, '언어'로 이루어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필요도 있다. '언어'는 본래 인간이 더 '잘' 살아남기 위한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 본질은 없어지지 않는다. 학문도 본질적으로는 더 잘 살기 위한 도구이다. 우리가 이동 수단으로 당연하게 사용하는 자동차를 생각해보자. 자동차는 처음에, 더 편리하게 이동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여 발명되었다. 그리고 더 넒은 세상을 보기 위해, 바다와 강을 건너기 위해 '배'가 만들어졌고, 더 멀리, 더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비행기'가 만들어졌다. 이동 수단으로 자동차'만' 있다고 알고 있거나, 자동차가 '이동 수단'이라는 것을 모른다면 세상은 거기가 끝이다. '이동수단'으로 비행기'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것 자체로도, 더 넓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자유로움을 느끼지 않는가.
우리는 '제대로' 공부함으로써 '한층 더 넒은' 시각을 갖게 되는 이로움을 얻게 된다. 학문은 세상을 더 잘 살 수 있게 하는 도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더 재미있게 살기 위해, 더 깊고 넓은 세상을 살기 위해, 내 의사나 생각을 더 잘 전달할 수 있기 위해, 또 다른 학문을 얼마든지 공부해볼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질 수 있다. 각 학문의 원리를 알고 있다면, 특정한 틀 안에서 우쭐대는 것을 멈출 수도 있고, 그 안에서 헤매며 불평 불만만 늘어놓으며 앉아있지 않아도 되며, 필요에 따라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새로운 공리를 세워볼 수도 있다. 그게 우리가 공부해야 할 이유다. 더 '잘' 살기 위해 말이다.
by i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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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의 본질은 하나이며 나누어져 있지 않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사람들이 그 한 측면을 제대로 연구하고 해명하기도 전에 이전 것과는 완전히 모순되는 다른 측면이 나타난다. 과학자들은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현실의 다양한 측면들을 통합시켜보려고 애쓰지만 그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과학지식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고 조화시켜줄 수 있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 우리의 현실이 취할 수 있는 모습의 엄청난 다양상 말이다. 이 비길 데 없이 무한한 가능태야말로 우리 우주의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본성이다.
- '리얼리티 트랜서핑' 가능태 모델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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