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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University에 해당되는 글 7건
- 2014.04.06 인간의 '언어'가 폐쇄적인 원을 가르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2014.04.06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
- 2014.04.06 TED _ 구름 속에 학교를 짓다 Sugata Mitra
- 2014.04.06 책 '유엔미래보고서 2040' 후기
- 2014.04.06 펜듈럼과 대학
- 2014.04.06 아인슈타인의 명언을 BU 수업의 맥락으로 풀어보기
- 2014.04.06 [Paul's Kitchen] Beyond University
글
1. BU는 나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BU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BU는 21.5세기를 위한 '창조적 지식'을 위한 곳이다. BU는 진짜 공부의 줄기를 잡아준다. BU는 그러나 양적인 공부는 해주지 않는다. 이는 각 개인의 몫이므로. BU가 실현하는 공부 방식은 이러하다. '양과 질'을 동시에 흡수하는, 추구하는 방식. 그것과 더불어 일정한 기간 동안 '음미'를 해야 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은 내게 어떤 유익을 주는가? '최고의 공부'라는 책에서 켄 베인이 말하듯 공부는 '태도'에서 많은 것이 좌우된다. 그리고 그 '올바른 태도'는 자신의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를 진정성 있게 선택하는 것이 그 시발점이다.
자기 스스로 진솔하게 의도하는 '공부', '지식'이 아니면 이미 양과 질, 음미, 응용... 이런 것들은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진정성 있는 學의 길로 인도하고 스스로 존립 가능케 하는 참 사부師父로서의 학교다. 물론 사부師父도 있다.(Mr.Paul) 그러한 점에서 BU의 공부는 나에게 진짜 공부를 가르쳐줄 유용한 배움터이다. 양과 질, 음미... 아직은 내게 익숙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조건화되어온 공부Style은 '결과'가 목적이 되는 '학점'이 목적이 되는 '등급'이 목적이 되는 그런 껍질을 핥는 식이었으므로.
물론 '결과'가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에도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장 16-23절 말씀 묵상] 이러한 구절이 있듯(난 종교가 없지만) 일의 결과는 언제나 있어야 하는 법. 그러나 현재 사회에서 조건화된 더러운 공부법은 내게 허술한 열매만을 안겨줄 것이니. BU는 내 인생의 참 열매를 맺는 그러한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다. 물론 그 방법은 내가 해온 습으로 인해 더 힘들 수도 있다. 농약 범벅 농사법보다는 건강한 유기농 농사법이 더욱 많은 땀을 요하듯 처음엔 더 늦어 보일 수 있다. 더 피곤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시선에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21세기는 창조적 지식사회이다. 『창조적 지식사회』
그러면 우리가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은? 『지식의 실체』, 『지식의 본질』
당연한 말이었지만 충격적이었다. 21세기 창조적 지식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지식'의 本에 대해 알아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말이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불패이듯, 나를 알고 지식의 실체와 본질을 알아야만 배움에 능하게 된다. BU는 나에게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태도를 가르쳐주는 학교다.
2. 인간의 '언어' 가 폐쇄적인 원을 가르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Mind로 정의한 공리에서 탄생한다. 개를 개라고 하고, 고양이를 고양이라 하는 Mind의 정의 + 공리에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돌고 돈다. 대백과 사전의 두께에 달하는 엄청나게 큰 국어사전을 보라.
A를 설명하려면 B라는 어휘가 필요하고,
B를 설명하려면 C라는 어휘가 필요하고,
C를 설명하려면 D라는 어휘가 필요하고,
...
Z를 설명하려면 A라는 어휘가 필요하다.
단편적으로 언어의 속성을 나타내보았다. 즉, 언어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의존적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리 A와 Z라는 언어는 현상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그들 간에 배타적으로 보인다 하여도 결국 돌고 돌아 상호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 진실은 '언어는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즉, '언어는 예외 없이 상대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언어'라는 것은 '맥락'과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존재다.
자, 그렇다면 절대적으로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언어'라는 녀석으로 기술되고 정리되는 '개념槪念'은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 가능한 것인가? 이쯤 되면 계산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절대적으로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 가능한 개념은 없다. 개념은 인간의 Mind로 공리화한 언어 텃밭과 논리 속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개념 또한 언어와 같이 절대적일 수 없는 놈이다. 이러한 개념으로 이루어지는 '학문'에 대해서도 다시 볼까. 절대적으로 예외 없이 상대적인 언어와 절대적으로 예외 없이 상대적인 개념이 '학문'의 구성요소가 된다. 이는 곧 무엇을 말하는가?
'학문'은 예외 없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언어와 개념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절대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즉, 인간의 Mind로 정의한 그 어떤 것으로도 절대적인 진리의 실체에 다가갈 수 없다. 이것이 이 학문의 유용성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학문은 우리 인류에게 꼭 필요한 도구이다. 무엇의 목적으로? '실용성' , 이것이 학문의 처음이자 끝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성과 언어, 논리로 기술되는 학문은 그저 삶의 유익한 Skill, Practical Solution을 주는 역할을 가질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수학문'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물론 우리가 사회 속에서 자의적으로 돈과 관련하여 구분 지을 수는 있으나 엄연히 다른 말이다. 그리고 옳지 못한 표현이다. 세상의 '학문學問'은 실용성을 위해 존재할 뿐, 그 이상의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순 없다.
그럼 여기까지의 맥락에서 다시 '언어'의 포인트로 돌아오자면, 인간의 언어는 실용적이지만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특히, 학자라면 자신의 영향력만큼 언어의 사용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 언어가 실용적일수록 그만큼 위험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학문을 다루고 그 속에서 유익을 맛보는 인류는 한편으론 학문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WHY? 학문은 절대적으로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고 될 수도 없으므로.
우리는 학문을 한다고 하면 그것이 세상의 진리를 밝혀 줄 것이란 희망 속에 산다. 그리고 그런 생각 속에 다른 것들을 도외시하고 잘 돌아보지 않게 된다. 내가 하는, 내가 주장하는, 내가 믿고 있는 이 개념, 학문은 절대적이니까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여기서 적지 않은 위험요소들이 그 자신을 거꾸로 고립시키기도 한다. 많이 공부할수록 똑똑해지지만, 동시에 여러 위험도 생겨난다.
인간의 'Mind'와 '학문學問'이 진리가 될 수 없음은 우리에게 어떠한 화두를 던지는가?
수 많은 학문을 접하게 되고 실용성을 이끌어 내더라도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에 도달하지 못함을 인지하여 즉 '내려놓음下心'으로 절대성을 내려놓게 된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태도Attitude'로부터 비롯되어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으므로 그것이 진정으로 가능케 하려면 겸허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여기까지 받아들이게 되면 지식의 본질, 실체를 왜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 가능하다. 지식을 학學하기 전에 지식의 본질, 실체를 알아야 실용성에 대한 유의미하고도 진정성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고 이는 '절대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한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 공부의 첫 순서, 첫 단추다.
by Ter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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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실 인류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에 갖춰야 할 Mindset은 분명 존재한다. Beyond University에서 배우는 것은 바로 이 최소한의 Mindset이라 할 수 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최소한의 기반이 되어야 하는 사고방식은 생존과 더불어 균형 있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 요소이다. 21세기에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과학이다. 고대과학이 아닌 근대과학(=뉴턴역학)과 현대과학(=상대성이론,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는 사실 인류 지성에 대한 경외심과 이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학문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물리학은 특히나 과학에서도 엄밀성과 객관성을 지닌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수를 느끼게 해준다. 뉴턴으로 인해 근대과학이 태동한 과학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과학이란 애초에 형이상학적 질문을 답하기 위한 학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이 양적 연구를 통해 객관적이고 엄밀하게 탐구할 수 있는 것만을 목표로 하였는데, 이것이 비록 매우 협소해 보이고 소소해 보일지라도 검증된 방식으로 차곡차곡 쌓여 인류 지성의 발달을 가능케 하였다. 그러한 발전이 인류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대인이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사와 과학만 아는 것은 절름발이가 될 위험이 있다. 과학을 한 걸음 물러나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정말 과학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과학이라는 것에 문제는 없는지? 의문을 던지며 과학에 대한 맹목적 믿음에 대한 경종을 울려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러한 의미에서 과학철학은 매우 큰 위상을 갖는다. 과학철학이 단지 철학의 한 분야에 불과해 보일 수 있지만, 가장 엄밀하고 객관성을 지닌 과학 특히, 근대과학과 현대물리학을 주로 탐구하는 철학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분야다. 과학철학을 공부하게 되면 놀랍게도 과학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권위를 지니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문 분야와는 다르게 어떻게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끊임없이 과학과 함께 발전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최근엔 인지혁명 이후 인지과학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과학과 반대 극단에 있는 종교와 영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심리학에서 찾을 수 있다. 심리학은 크게 4세대로 구분할 수 있다. 1세대는 정신분석학, 2세대는 행동주의 심리학, 3세대는 인본주의 심리학, 4세대는 자아초월 심리학으로 말이다. 종교와 영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학문으로 자아초월 심리학이 있다. 이 학문은 수많은 철학, 종교, 심리학, 문화인류학 등 학문을 통합시켜 영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져다준다. 어떠한 종교적, 영성적 편향을 벗어나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과 영성 사이의 가교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철학을 들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과학에 대해서는 과학철학, 종교와 영성에 대해서는 형이상학 그리고 주체가 객체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서는 인식론을 들 수 있다. 결국 한 인간이 생각하는 총체적 체계는 하나의 사고 체계를 이루고 이 세상에는 70억이라는 인구수만큼이나 70억의 철학체계가 존재한다. 인류를 이끌어 온 것은 시대적 역사적 흐름과 함께 사상이 지배해 왔기 때문에, 서양 철학사를 통해 인류가 어떠한 사고에 영향을 받아 발전해 왔는지를 심도 있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지혁명 이후 모든 학문의 근간에 대해서 새롭게 재조명해야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대학의 인지과학에 대한 미비한 발전을 뒤로하고 주체적으로 인지과학에 대한 지식을 접해야 한다. 학문의 근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인지과학의 영향이 점점 구체적으로 가시화될 것이다. 사실 인지과학의 발달로 서양철학 안에서 한 기둥을 담당한 인식론은 그 자체로는 이제 무의미해졌으며 19~20세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미 힘을 잃었다. 인지과학의 흐름인 [고전적 인지주의 - 연결주의 - 뇌 - 대니얼 카너만의 휴리스틱스 - 내러티브적 마음 - 체화된 인지] 의 맥락을 전반적으로 이해해 두어야 한다.
이외에도 카오스, 복잡계, 사회네트워크 이론과 양자정보이론과 같이 과학계의 새로운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분야와 미래학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언어, 공리, 논리, 학문에 대한 올바른 이해 그리고 로버트 기요사키가 주장하는 것처럼 고용인/자영업, 전문가/사업가/투자자의 사분면을 이해함으로써 각 분야의 사람들이 돈에 대해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통합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도 결국 이 4분면에서 벗어나 경제적 활동과 사고방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Beyond University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21세기에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 쌓아야 되는 근간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곳이고, 각 분야에 대해 스스로 접근하여 교양을 쌓고, 생존과 자아실현에 반드시 필요한 Mindset갖추게 동기부여를 한다. BU멤버는 각자 한국 대학에서 가르쳐주지 못하는 반드시 알아야 할 Mindset을 갖추어 나가면서 진정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가며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가 인생을 완성시키는 삶을 지향한다. 뿌리를 깊고 균형 있게 제대로 잡아주는 교육을 하는 곳이 바로 Beyond University이며 이러한 교육에 있어 한국의 어떤 교육 과정도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by Oc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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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가타 미트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가 더 이상 우리의 미래를 대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존의 학교에서 선생이 학생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고무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례로 수가타 미트라는 인도의 아이들에게 영어로 된 컴퓨터를 제공했다. 아이들은 이게 뭐냐고 물었지만, 수가타 미트라는 나도 모른다고 말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이들이 모여서 서로 영어를 가르치며 컴퓨터 사용법을 익힌 것이다. 더 나아가, 수가타 미트라는 컴퓨터에 10년 뒤에나 배울 교육 내용을 넣어놓고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이 또한 아이들이 영어와 컴퓨터 안에 있는 내용들을 공부하면서 지식을 쌓아가게 된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교육을 받은 대다수의 학생들과 성인들은 주체적으로 배움의 과정을 설계하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능력과 기회를 일찌감치 거세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한국의 미래를 볼 때, 결국 정해진 TO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하는 구도 속에서 살아남기만 하자는 얄팍한 생각은 웰빙, 행복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창의적이고 새롭고 남과 다른 경쟁력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일관되고 일방향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서는 더 이상 경쟁력이 갖추기 힘들다.
결국 21c의 공부란 것은 단지 수동적으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자기에 맞게 능동적으로 조직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Beyond University과정 속에서 코치님의 수업내용과 책 선정, 교육 방향에 대해서 수동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떻게 주체적으로 교육내용을 자기화하는가가 매우 관건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후기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수능이라는 제도 속에서 너무나 경쟁적이고 스트레스 받는 과정 속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 과정 속에서 칭찬이나 존중받는 경험은 많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공부를 설계해나가는 기회조차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공부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우는 교과과정 내용을 10살도 안되는 교육 경험이 전무한 심지어 모국어가 아님에도 배우는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좀 더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배움이라는 것을 즐겁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by Oc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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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현재 내가 살아가고 인식하고 있는 아주 좁은 세계 속의 사람들은 미래의 변화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의 인생의 사이클은 한 달 단위이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일을 하고 급여를 받고 급여의 대부분을 빚, 대출이자, 저축,생활비 등으로 소비하고 나면 당장 다음 달 월급을 기다리며 다시 일을 한다. 학생들 또한 매 학기 별 학사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없이 눈앞의 상황만 보게 되는 것은 직장인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 달 혹은 1년 그 이상의 미래를 예측하고, 변화의 흐름에 맞춰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발목을 잡는 현실적 상황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과 달리 미래 변화의 흐름을 느끼고 뚜렷이 보고 있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그들은 유엔 미래 보고서2040에서 앞으로 미래가 크게 두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바로 하나는 자동화 및 디지털화라는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중요성 강화라는 흐름이다.
자동화 및 디지털화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현재의 일자리가 소멸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까지 20억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한다. 그 예로 3D프린터를 들 수 있다. 3D프린터의 급속한 발전은 의료기술 분야와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3D프린터가 치기공 분야에서 가장 먼저 사용 될 것이라고 한다. 3D프린터가 맞춤형 틀니와 인공 관절 같은 보형물을 프린트한다면 기존의 치기공사가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무인 자동차와 무인비행기의 등장으로 운전과 조종 관련 종사자들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교육의 오픈소스 운동과 개인별 학습 분석을 통한 맞춤형 교육이 가능한 스마트 교육시스템의 도입은 교사의 역할을 축소시킬 것이다. 출산율 저조로 인한 인구 감소는 교사 인원 감축을 더욱더 부추길 것이다. 또한 무어의 법칙을 뛰어넘는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기존의 직업들을 위협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가 과연 정말 닥쳐올까'?라는 안일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 역사 안에서 매표를 해주던 역무원이 자동화 매표소 기계로 대체된 것과 톨게이트에서 통행비용을 받던 아가씨들이 하이패스와 자동화 기계로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을 생각하면 미래의 그러한 변화가 오지 않을 것이라 낙관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기업이나 정부가 무엇인가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부 또한 앞으로 고령화사회로 인한 노인인구 증가로 국가의 예산을 의료부분이나 노인 복지 부분에 많은 부분을 할당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자동화와 디지털화로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현재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의 국민연금 시스템이 몇 년 뒤 붕괴될 것이며 개인은 은퇴 후 노후자금을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이렇듯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을 것이다.
미래보고서 2040은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미래 변화로 인한 위기만을 얘기하는 책이 아니다. 미래에 사라질 것들은 사라지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고 또 새로운 것을 낳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미래의 위협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내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 떠오른다. 과연 현재의 우리가 미래의 변화에 대응하여 위기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느냐는 것이고, 앞으로의 미래 세대들이 그러한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며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신념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 그리고 가치관과 신념, 삶에 대한 태도는 개인의 삶 전체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만약 우리가 미래의 변화 앞에서 무력하기만 하다면 현재 우리의 교육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러한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고, 기존의 시스템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우리 한국의 학생들은 빚지고 힘들게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또다시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스펙경쟁을 벌여야만 한다. 고스펙을 쌓아 기업에 들어 간 사람들에 대해서 기업은 공채로 뽑아 다시 처음부터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불만이다. 기업으로서는 바로 쓸 수 있는 인재를 뽑고 싶어 하는데 현재 대학 교육이 그러한 교육을 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스펙경쟁에서 뒤진 대다수의 대학 졸업생들은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4년제 학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자리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혹자는 대학이 '진리의 상아탑'이며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일꾼을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인생의 진리와 원리를 배우는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다. 모든 대학생들이 결국은 취직을 위해 학위를 따려고 한다. 대학은 자신들의 수업을 판매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고, 학생들은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취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대학에 가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러나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정체성과 일꾼 공장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느라 기업과 학생들이 원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보고서 2040에 의하면 이러한 교육의 문제점이 개인의 중요성강화와 함께 해결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것은 학습방법의 혁명과 교육혁명으로 인해 똑똑한 개인들이 등장하면서 가능하다. 개인들은 기존의 낡은 공장형 교육이 아니라 디지털교과서나, 가상·증강현실 직접체험을 통한 개인별 맞춤 교육을 받게될 것이다.또한 무크와 같은 교육의 오픈소스 운동이 활성화되어 지역대학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경쟁력 있는 과정들을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될것이다. 이렇게 개개인은 더 똑똑해지고 전문가적 역량을 갖추게 될것이다. 그리고 똑똑한 개인들이 재능전쟁을 벌이며 노동에 대한 수요에 따른 세계이주가 급증할 것이다.
앞으로 대학은 일자리동향, 기술 발전, 기술 동향, 기술 요구사항 등 업계의 요구를 반영하는 쪽으로 기울게 될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에 대학이 할것이라 생각했던 '진리의 상아탑'의 역할은 누가 할 것이며, 인생의 진리와 원리는 누가 가르 칠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내가 Beyond University에 참여한 것이다. 유엔미래보고서 2040을 읽고 내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내가 무엇을 배우고, 준비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by Elizabeth Taylo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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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펜듈럼은 사회 모든 곳에 영향을 끼친다. 그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국가에서부터 심지어는 박테리아군까지 모두 하나의 펜듈럼이다. 이 많은 집단 중 현재 BU 수업내용과 관련해서 집중해봐야 할 곳은 바로 '대학'이다. 펜듈럼이 대학을 어떤 방향으로 가게 했는지, 어떤 파괴적 영향을 줬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정말 펜듈럼은 도쿄대생들도 바보로 만들까? 일본의 지성,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의 저서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를 통해 일본의 대학교육이 산으로 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을 통해 대학이라는 기관의 펜듈럼이 생겨난 역사, 어떻게 그 펜듈럼이 유지되어 왔는지, 펜듈럼이 대학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등을 알 수 있다.(우리나라 대학은 일본 대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도쿄대 이야기는 곧 우리나라 대학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의 대학은 본래 유럽의 명문 대학과는 달리 자치적 조직체가 아니라 국가의 여러 기관들의 이해가 얽혀서 만들어졌다. 당시의 정황 상 대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교양 인재를 육성하는 게 아니라 나라 발전에 헌신할 인재 육성에 초점이 맞춰지게 됐다. 즉 설립 역사에서부터 대학은 정치적 목적과 긴밀했다. 현 제도에 충실한 엘리트를 양성하는 것. 목적이 이러하니 일본의 교육제도는 자연스레 획일적이고 중앙통제적으로 흘러갔다. 이로써 대학에서는 졸업 후 바로 국가와 기업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전문지식, 실용적 학문만을 가르쳤으며 우주, 인간, 사회에 대한 원리를 알 수 있는 학문들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게 되었다. 애초에 대학은 진리 추구가 아닌 이익, 권력 추구가 목적이었던 것이다.
대학이라는 펜듈럼이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더 많은 지지자들을 유혹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입시제도, 학벌, 학점, 학파, 취업 등등. 이런 유혹을 통해 교육부, 입시생들, 사교육 시장, 교수 집단이라는 기존의 펜듈럼을 강력히 지지하는 새끼 펜듈럼이 생겨났다. 이것들은 대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관심 없어 보인다. 심지어 왜 입시제도가 존재하는지, 왜 대학에 가야하고, 왜 대학을 좋은 데로 보내야 하는지, 왜 진리를 가르쳐야 하는지 물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그저 펜듈럼이 만들어낸 법칙대로 행동한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고 그것이 최선이 아님을 의식적으로 인지할지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 채 펜듈럼이 흘러가는 대로 떠밀려갈 뿐이다.(이 점은 자유의지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어보인다.)
펜듈럼의 무서운 점은 자기 지지자들과 다른 펜듈럼 지지자 그룹이 대립하도록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는 대학을 매우 정치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대학의 정치화는 학생들이 폭넓은 교양을 쌓는 걸 막고 복잡계 이론, 양자정보이론, 주역 등과 같은 원리적인 학문을 배우지 못하게 한다. 즉 '도쿄대생들'을 바보로 만든다. 예를 들면, 대입시험에서 이과, 문과생들은 각각 문과, 이과 과목수를 매우 적게 하거나 중학수준으로 시험치 도록 하는데 국립대학이 그렇게 시험을 내는 이유가,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이 모두 사립대학에 가기 때문이다. 또한 교양학부에는 전공학부와는 달리 독자적 인사권이 주어지지 않는 것, 당연히 접해야 하는 새로운 학문의 유입이 기존 학파의 텃세로 배척당하는 경우도 펜듈럼이 만든 대립과 관련이 있다. 이런 정치적인 이유들로 꼭 배워야 할 걸 배우지 못하고 바보가 되는 것이다.
펜듈럼의 또 다른 무서운 점은, 펜듈럼은 사람의 약점(감정)을 건드린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취업을 못할 것 같은 두려움, 가장 인기 있고 유망한 과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인해 진짜 인생의 원리를 제시하는 학문을 접하지 못하고 전문 지식만을 수집하게 된다. 교수도 마찬가지다. 나만 옳다는 허영심, 자존심 때문에 학생들을 진리로 안내해야 하는 임무를 망각한 채 밥그릇 싸움만 하게 된다. 펜듈럼은 진실, 본질로 멀어지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파괴적이다.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펜듈럼의 규칙에 충실해서 살림살이가 나아졌는가? 펜듈럼은 지지자 개개인의 운명엔 관심이 없다. 오직 더 많은 에너지를 모으는 게 목적일 뿐이다.
펜듈럼의 존재를 인정하고, 게임 속에 빠지지 않고 바깥에서 관조하면 펜듈럼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의 경우, 대학 펜듈럼이 낳은 입시제도 펜듈럼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희생자였다. 그것을 벗어나고자 했을 땐 괴롭힘도 많이 당했다. 하지만 코치님의 강의 및 독서를 통해 어느 정도 펜듈럼에 대해 자각하고 적어도 대학 펜듈럼 속에는 더 이상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펜듈럼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지게 되면 정보의 미개척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BU에서 배우는 내용이 바로 그런 지식이지 않을까 싶다. 펜듈럼은 오직 다른 펜듈럼으로 물리칠 수 있다. 나는 '다른 펜듈럼'으로 BU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앞으로 이 BU 펜듈럼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신의 목적에 맞게, 지혜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by Aud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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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종교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며,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 종교 없는 과학, 과학 없는 종교 모두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다. 본디 하나였으니까. 과학과 종교 외에도 모든 학문이 하나에서부터 나왔다. 아인슈타인은 이 점을 정확히 가리킨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명언을 통해 사람들이 종교와 과학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풍토를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과학, 종교를 따로 아무리 깊이 연구한들 결국 속 빈 강정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학문을 넘어서서, 분리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인생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가도 지적한 거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절름발이보다 장님이 더 안 좋은 것 같은데, 지금 둘이 통합이 안되고 있는 게 종교 쪽이 더 심해서 그렇게 표현한 듯하다.
'하나의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너는 먼저 그 게임의 규칙을 배워야한다. 그런 다음에는 몰입하여 그 게임 자체를 즐겨야 한다.'
: 이 명언은 BU에 맞는 명언이다. BU는 크게 볼 때 인생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공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는 우주, 자연 속에서 사는 '인간'이라는 존재이므로 당연히 우주, 자연, 인간과 관련된 중요한 원리나 법칙들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인생은 자신의 신념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며, 원리 없이 살면 언제든 게임에서 패배할 수 있다. 게임의 규칙을 알고자 하고, 알 수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부해야 하고, 이기는 데 도움이 되는 스킬이나 아이템이 있다면 가득 득템해두어야 한다. 그냥 게임도 아니고 목숨이 하나 밖에 없는 인생 게임인데! 준비를 마쳤다면 그다음엔 이기는 게임을 신나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때그때의 상황을 즐기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말은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 물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인생의 원리, 규칙이 있다 한들, 그것은 100%를 의미하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를 알았다고 해도 100% 게임에서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다. 승리할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 인간이 세상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수업 내용대로 인간은 언어로 사고하고 언어는 절대적이지 못하며, 실제 세계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말한 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본질적으로 말이 안되며, 쓰면 안 되는 말이기도 하다.
by Audrey
생각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된 노동이다. 생각하는 사람이 그토록 적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만약 네가 그것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너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의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너는 먼저 그 게임을 규칙을 배워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몰입하여 그 게임 자체를 즐겨야한다.
나의 배움을 방해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학교 교육이었다.
: 우리 동양 사람들은 서양과 달리 일방적인 교육을 받아왔다.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주입식 교육으로 무작정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거기에 대한 생각과 의문보단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암기해야 했다. 나에게 토론이라는 개념이 아직 어색한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나는 그 때문에 강의를 듣는 내내 힘들었다. 계속 사고하라 하는데 주입식 교육으로 굳어진 내 머리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사고한다는 것이 이토록 고된 노동인지 그전에는 잘 몰랐다. 새로운 배움을 방해한 건 다름 아닌 주입식 교육을 가르치는 학교 시스템이었다.
하나의 게임에서 승리를 하려면 먼저 그 게임의 규칙을 배워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몰입하여 그 게임 자체를 즐겨야 한다, 공부 또한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새로운 방식을 배우고, 적응하여 그것을 즐기는 거야말로 공부의 왕도가 아닐까.
힘들긴 하지만 새로운 걸 하나씩 배우면 배울수록 지적 호기심도 높아져 간다. 이해를 하기 위해서, 또는 이해할 때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다. 이해를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이해한 걸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보아야 한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을 충분히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도해'다. 이해한 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BUer'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기존에 배웠던 공부 체계에서 한발 떨어져 나와 새로운 방식을 배우며 자신에게 적응시켜 어떤 방법이 맞는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휴먼 디자인을 보면 제각각 공부 방법도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며 공부하는 것보다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즐겁게 공부하고 싶다.
by Ai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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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Beyond University는 전 세계 대학들이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문과, 이과의 통합적 교육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대학 교육의 목적은 '지식의 본성', '언어의 본성', '의식의 본성', '학문의 구조'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하며 인간을 지배하는 '자연의 원리', '우주의 원리' 앞에 겸허해 지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 지식을 '체계적으로', '균형 있게' 습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어떤 대학도 이 역할을 제대로 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우주의 진리를 찾는 곳universitas'라는 원래의 목적을 전혀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BU의 멤버들은 '주역I'Ching', '양자정보이론QIT', '초개인심리학TP', '복잡계 이론CAS', '천문해석학', '휴먼디자인', '해부학', '알렉산더 테크닉AT', '키네지올로지', '에너지심리학EP', '영성과학' 등 한 개인의 평생에 거대한 영향을 미칠 핵심 학문들 또는 해당 학문들의 기반 원리들을 배웁니다.
BU와 BU의 핵심 멤버들은 21세기 전 세계의 대학 혁명을 주도하게 될 것입니다."
- Beyond University 창립자, Pau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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