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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해당되는 글 15건
- 2014.07.16 [BU_podcast] 9화. ‘선형성' vs ‘非선형성’ (‘우연’이 정말 ‘우연’일까? + ‘창조론’과 ‘진화론’은 과연 배치되는가?)
- 2014.06.17 [BU_podcast] 5화. 학문의 원리와 구조 2편 _ 루이스 캐럴의 패러독스(논리는 논리적이지 않다), 대학 이대로 괜찮은가
- 2014.04.06 [Paul's Kitchen] "진정한 공부란?"
- 2014.04.06 책 '최고의 공부' 후기(illy)
- 2014.04.06 전략적 공부의 핵심, '메타 인지metacognition'
- 2014.04.06 인간은 학문으로, 이성으로, 언어로 절대! 절대적인 것을 알 수 없다.
- 2014.04.06 왜 '뭔가 하나를 건드려서' 무너져보면 안 되는 것인가?
- 2014.04.06 BU수업 + 위기/변화 MindMap 후기(Miranda)
글
[BU_podcast] 9화. ‘선형성' vs ‘非선형성’ (‘우연’이 정말 ‘우연’일까? + ‘창조론’과 ‘진화론’은 과연 배치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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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의 과학적 연구들이 직면하고 있는 사실은 무엇일까?
- 삶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창조적인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 '우연'은 정말 '우연'일까? 단순히 선형적이지 않고,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면 전부 '우연'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 '창조론'과 '진화론', 과연 대치되는 이야기일까?
- 우리가 제대로 아는 게 도대체 뭘까?!
위 질문들의 답이 궁금하신가요? BU팟캐스트 9화에서 같이 고민해봅시다^^
"우리나라 대학들을 대신해 '단절된 조각'들을 맞춰갑니다."
'진짜 공부', '진짜 인생’을 위한 위키리크스, Beyond University!
* Beyond University 팟캐스트는 매주 '월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 'Podcast'와 '팟빵' 앱에서 Beyond University를 검색하시면 해당 내용을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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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_podcast] 5화. 학문의 원리와 구조 2편 _ 루이스 캐럴의 패러독스(논리는 논리적이지 않다), 대학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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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학문의 원리와 구조 2편 _ 루이스 캐럴의 패러독스(논리는 논리적이지 않다), '대학 이대로 괜찮은가'
이번 5화에서는 '논리'의 실체를 밝힙니다.
'공리'는 약속이다. 그렇다면, '논리'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논리조차 실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음을, 논리에는 아무 필연성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또한, 대학의 실태에 대해 함께 고민해 봅니다.
'진짜 인생', '진짜 공부'를 원하신다면, 방송을 통해 자신과 만나시기 바랍니다^^
"진짜 공부를 위한 Wiki Leaks, 'Beyond University'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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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미지1. '최고의 공부' / 켄 베인
이미지2. '공부책' / 조지 스웨인(MIT에 15세 입학한 하버드 교수)
위 두 권의 책 모두 제가 평소 강조해 왔던 '공부의 본질', '공부의 목적'을 매우 잘 표현해 주고 있네요. 독서법의 대가 모티머 애들러가 말한 바와 같이 공부의 목적은 '이해력을 높이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시험 성적을 잘 받고, 좋은 대학의 졸업장을 받아도 얼마든지 실패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며, 만족 없는 삶을 살 수 있죠.
"교육의 목적은 순수하게 실용주의적인 것으로서, '힘'이라는 말로 가장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게 하고, 잠재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 <공부책>
"최고의 학생들은 정신 능력의 성장과 호기심 충만한 삶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학점이나 명예보다는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하지만 그들을 이끌어 준 원동력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은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들에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존재하는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 노력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내 역할은 무엇인가? 이런 고민들 속에서, 그들은 바람직한 자아상과 자신이 창조하고 싶은 세상에 대해 생각했다."
- <최고의 공부>
현 대학이 제공하는 성적 중심, 취업 중심의 공부는 인생의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인생은 매우 긴 항해이기 때문에, 단순히 첫 번째 직장에 잘 취업하기 위해서가 아닌 인생 전체에 유익을 주는 방식으로 공부를 해 나가야 합니다.
위 두 권은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책들로서, 진지한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공부습관뿐 아니라, 인생 전체를 돌아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니, 시간을 들여 음미하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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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다는 것. 성공이라는 게 무엇일까?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진학? 성적을 잘 받아서 1등을 하는 것? 대기업 취직? 안정된 직장? 그런 사람들을 성공했다고 말하진 않는다. 혁신적인 방식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학생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 교사, 독자들을 휘어잡은 작가, 혁신을 일으킨 벽돌공이나 의상 디자이너,, 의사도 그냥 의사가 아니고, 작가도 그냥 작가가 아니며, 선생님도 그냥 선생님이 아니다. '혁신'을 일으키고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멋있다고 하고, 성공했다고 하고, 그들을 존경한다. '최고의 공부'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그들의 일정한 패턴을 말해줬다.
세상을 변화시킨 창의적인 사람들은 그냥 태어나보니 천재였고, 아무런 장벽도 노력도 없이 성공을 이루어 낸 것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제자리에서 최고가 된 사람은 없었다. 나처럼,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그들이 나와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훌륭하고 모든 게 갖춰진 집안에서 처음부터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최고의 공부를 했다. 다른 어떤 기준에 대한 최고가 아니라, 자신의 '최고' 말이다. 책에 나온 전문적인 말을 빌려오자면 '외적 보상'을 위해서 하는 '피상적'이거나 '전략적'인 공부가 아니라, '내재적 동기'를 충족시키기 위한 '심층적'인 공부.
자신을 사랑하는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성적이나, 특정 성과를 쫓지 않으니 눈이 넓어져 세상을 둘러보 게 되고, 특정 분야에 갇혀있지 않고 마음껏 넓은 범위의 공부를 하여 통합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다. 남들과의 경쟁은 상관이 없었으니 성적이 안 나오는 과목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고 순수한 열정으로 임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열정을 사랑하는 훌륭한 멘토가 곁에서 도와주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힘든 기억, 처절한 실패를 상처로 만들어 그 안에서 헤매지 않고 또 다른 성장을 위해 또 다시 깨어났다.
그래, 그들은 늘 깨어있었다.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을 믿었다. 그랬기 때문에 늘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일은 언젠가 지치게 마련이다. 실패를 했을 때,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다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 그들이 성공한 건 말 그대로 '자연(自然)'스러운 일이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일이다.
책에서도 나왔듯이, 어린 시절의 내 모습, 그때의 느낌을 찾아내는 것도 도움이 될듯하다. 동네 도서관을 부지런히 오가며, 단순한 판타지 소설부터 '관상 보는 법'에 대한 책까지 아무렇지 않게 빌리며 읽었던 그 모습. 수능 모의고사 성적은 죽어도 안 나오지만 일단 재미가 있으니 미적분과 물리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 열정. 밥 먹을 시간이 없어 길 가면서 밥을 먹어야 했었는데도 인문대 수업을 청강하러 다녔던 그 열정. 이 열정이 다 어디로 갔었나.. 한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을 향한 나의 열정은 무시하고, 이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여기에 집중해야 돼!로 변해 있었고, 또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도대체 뭘 위해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며 꾸역꾸역 공부하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나의 순수한 열정을 다시 갖고 와야겠다!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주름이 쭈글쭈글 생길 때까지도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어도 상관없다. 그저 '세상'이라는 큰 그림을 보며 '와 정말 아름답구나!' 하며 감상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by i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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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사람들은 공부하고, 생각하는 동안 자신의 사고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 과정을 ‘메타 인지metacognition’라고 하는데, 메타 인지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을 말하며, 자신의 사고과정을 ‘위에서’ 보면서 제어한다는 의미로 ‘메타meta’라는 용어가 앞에 붙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지식이 쌓이는 정신적인 과정을 ‘인지적인 과정’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자리 잡고 앉아 17세기 과학사를 부런히 읽으면 그 내용을 선지식과 연결하고, 머릿속에 정보를 저장하는 등 여러 가지 인지적인 과정이 진행되죠. 이 상황에서 우리는 오직 내용의 차원, 인지적인 차원에만 몰두해있습니다. 이런 몰아지경에서 벗어나 휴식을 갖고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나타나고, 어떤 흐름을 타는지 가만히 고찰해볼 때 비로소 우리는 사고 위의 차원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즉 생각에 대한 생각, 인지에서 초인지의 차원으로 옮겨가게 되는 것인데, 이렇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거나 성찰하는 초인지적인 과정은 고등의 사고과정에 속합니다.
메타 인지가 중요한 점은 이 과정들이 학습을 관찰하고, 계획하며 통제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때문에 '메타인지적인 지식'과 '메타인지적인 제어'는 양질의 학습에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분야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효과적으로 학습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특히 메타인지적 통제와 제어 과정에 능숙하고 전략을 유연성 있게 사용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재작년에 방영된 ‘0.1%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전국모의고사 전국석차가 0.1%안에 들어가는 학생들과 평범한 학생들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메타인지 능력의 차이라는 점이 드러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메타인지 능력은 어떻게 향상될 수 있을까요? 사실 메타인지적인 지식은 언어나 역사 과목처럼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아성찰, 반복적인 훈련과 성찰의 교환을 통해, 마치 근육처럼 서서히 생겨나는 것입니다. 공부 중에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배경 지식을 탐구하고, 틀린 사고과정을 바로 잡으며, 정신의 역동적인 힘을 찾으려 애를 쓰거나, 또는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학습 일지를 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메타인지 능력 향상 방법으로 꼽힙니다.
이 밖에도, ‘설명’ 또는 ‘가르치기'라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알고자 하는 지식에 대해 진짜로 이해하고 있는 게 맞는지를 자연스럽게 체크해나갈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 또는 나 자신에게 설명을 하면서 실제로 내가 무엇을 이해했고, 무엇에서 막히는지 발견해 메타인지 감각을 날카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이죠. 실제로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은 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은 진짜 지식이 아니라고 인지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이는 끊임없이 세계적인 인재를 배출해내는 유대인들의 대표적인 교육방식인 ‘하브루타’의 핵심 정신이기도 합니다.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지식 사회에서 ‘학습’은 생존 도구가 됐습니다. 더 이상 대학 졸업장이 그 사람의 전문성을 증명해주지 못하고 있고, 어느 직업이든 항상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접해 자신의 전문성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평생교육’이 새로운 트렌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공부의 시작이자 기반인 ‘학문의 본질과 구조’ 그리고 ‘공부하는 법’, ‘독서법’에 대해 무지합니다. 고등 학문을 다루는 대학에서조차 학습 방법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어 학생들의 기본기는 점점 더 부실해져 갑니다.
가장 먼저 지적인 능력이 자라나는 토양이 건강한지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건강하지 않다면 공부의 원리와 방법을 찾아보고 반복적으로 훈련해야 합니다. kpop스타에서 단계가 점점 높아져 생방송으로 갈수록 참가자의 기본기에 결과가 좌지우지되듯, 점점 복잡해져가는 사회에 뛰어들 때 언제나 기본기에 신경 써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학습하는 기본기가 탄탄하다면 어떤 지식을 접하든, 어떤 경험을 하든 나의 전문성으로 고스란히 쌓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by Aud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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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학문으로, 이성으로, 언어로 절대! 절대적인 것을 알 수 없다. (0) | 2014.04.06 |
글
인간은 학문을 통해 유용성을 얻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애초에 인간은 무언가를 인식하고, 또 서로 인식한 바를 나누기 위해 언어를 만들어냈다. 즉 인간은 언어를 필요로 하는 존재인 것이다. 앎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언어를 사용해 내가 '안 것’을 설명하고, 의사소통하는 '유용성'을 마음껏 누린 대신 '절대성'이라는 대단한 무언가를 놔버려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앎'을 설명하기 위해 언어를 택했지만, 그 '앎'을 100% 완벽하게 전달할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언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언어는 약속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인해 엄청난 한계를 가진다. 평소에 쓰는 언어는 배타적이고, 독립적으로 보인다. 특히 학문에서 사용되는 전문적인 용어들은 더 그렇다. 하지만 언어는, 실제로는 '상호의존적'이다. 이는 사전을 통해 금방 알 수 있는데, 어떤 단어의 뜻을 찾고, 뜻풀이에 나와 있는 단어를 또 찾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 결국 폐쇄적인, 순환하는 원을 만든다. 결국 최초로 정의된 단어 하나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언어인 것이다. 이는 언어가, 그리고 언어로 이루어진 모든 것이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절대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언어를 사용해 표현되는 학문, 논리, 인간의 이성 또한 절대적인 것을 결코 논할 수 없다. 인간은 정의를 내리지 않으면 사고하지 못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앎'은 이성을 통해 ‘이해’하는 것과 다르다. 결코 앎을 설명하지 못하지만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이상, 인식론을 발전시켜서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안다는 건지에 대해 연구할 필요성이 생기게 됐다.(물론 이 또한 약속으로 이루어진 ‘상대적’인 언어의 틀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인식론의 연구는 '철학'적 사고의 본질이 된다. 그리고 이 인식론이 심층적인 수준에 접어들어 '인간이 사물, 세상의 본질이 어떠한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실험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결국 '과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학문은 발전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인간이 어떻게 학문을 만들고 공부하게 됐는지 그 시발점을 찾는다면 그 중심엔 인식론을 본질로 한 철학과 과학이 있다. 그래서 학문을 시작하는 시점이 있는 사람이 철학사, 과학사를 공부한다는 건 대단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어떤 학문을 공부하고, 어떤 책을 읽어도 대부분 철학과 과학이 녹아들어가 있으며, 그게 바로 모든 지식을 연결하는 링크 포인트가 된다. 그걸 모르고 그냥 개별적인 지식만 공부한다면 그냥 조각 모음하다 끝날 수 있다. 학문의 원리와 구조, 그리고 철학사와 과학사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단단한 지적 기반을 쌓을 수 있는 토대의 역할을 할 것이다. 이것이 스스로도 평생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 진짜 열쇠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대학은 학문의 본질, 과학, 철학 어느 것 하나 중요시하지 않는다. 각 분야별 전문가의 무지일 수도 있고(이게 학문의 기반일 거라 생각 못하는), 권력을 조금이라도 더 행사하려는 정치적인 펜듈럼의 작용 때문일 수도 있다. 그 결과 학생들은 결국 단절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단지 학문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전반적인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데, 자기 스스로의 세계에 갇히고, 관계적으로도 고립되게 만들 수도 있다. 과학사, 철학사를 보면 시대가 어떻게 순환하는지 그 원리를 알게 되는데, 이 사실을 깊이 알면 삶을 근시안적으로 살지 않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과학사, 철학사를 통해 당시 사람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봤는가'와 관련한 수많은 관점들을 알게 된다면 사고가 더 확장되고, 삶을 바라보는 시야 또한 더 열리게 될 것이다. 이쯤 되면 대학에서 교양필수로 철학과 과학을 뺀다는 게 그저 그런 이야기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최근 들어 삼성, 마이크임팩트, 여러 대학, 방송사 등에서 많고,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의 토대가 되는 ‘인간이 어떻게 사고하는가’하는 인식론적인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 이상 인문학의 본질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 프로그램을 주최하는 사람들은 인문학의 기반이 어떠한지 모르고, 그저 인문학처럼 보이는 것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지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인문학의 본질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풍요롭게 하고, 교양을 쌓는 데에 의의를 둔다면 상관없지만. 이는 내용의 유용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런 표면적인 내용으로는 모두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삶의 태도 변화'로 이어지기가 힘들다.
인간이 단어 하나를 만들고 정의하는 것은 끝없는 지知의 우주를 개척해나가는 것과 같다. 마치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캐릭터가 움직여 지도가 보이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의가 없으면 사고력의 확장도 없다. 하지만 정의는 왜 그런지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약속’의 과정이며, 언어를 통한 사고와 판단도 모두 상대적이다. 우리는 말로는 절대, 절대적인 것을 논할 수 없다. 심지어 이렇게 자명하게 실존하는 ‘나’가 누군인지도 절대 말할 수 없다.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성은 의식 수준이 1~1000에서 400대라고 한다. 이는 우리의 이성으로, 학문으로, 언어로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이지 않으면, 머리로 이해가 안되면 존재하지 않으며 거짓인 걸까? 학문은 우리에게 굉장한 유용성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모든 학문은 세상을 한 측면에서만 설명하기에 근본적으로 한계를 지닌다는 사실을 모르면 그 유용성으로 인해 그 학문만을 맹신하거나, 사람을 마음대로 심판해 결국 고립되는 등의 피해를 볼 수 있다. 학문을 깊이 하기 전, 내가 현재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한 것인지 자각하고,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올 때 내려놓을 수 있는 진짜 지혜를, 올바르고 건강한 태도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 학문의 시작과 태도의 시작은 같이 간다.
by Aud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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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우리는 공부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재미가 없었고, 그 재미없는 공부를 '피상적' 혹은 '전략적'으로 머릿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으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도 가고 직장도 다닌다. 여전히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기반 위에 쌓여만 가는 지식 아닌 지식으로 억지로 공부하고, 외우고, 시험보고 합격하고 잊어버리고 단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로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억지로 일하고, 불평불만을 토로하며 산다. '뭔가를 하나만 건드리면' 무너질게 뻔한데 그 사실을 들키면 안 되니 힘들게 힘들게 포장하고 또 포장해서 점점 자기가 만든 틀안에 갇혀 평생 그 안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뭔가 하나를 건드려서' 무너져보면 안 되는 것인가? 뭐가 두려워서 무너져보지 못하는 것인가? 왜 힘들게 힘들게 꽁꽁 감싸야만 하는 것인가?!
특정 단어에 대한 국어사전을 찾고 그 안의 단어를 찾고 또 찾다 보면 결국 처음 시작했던 그 단어로 돌아온다고 한다. 몇 단어만 찾고 찾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실체는 없고 서로가 서로를 설명하는 '의존적'인 관계로 버티고 있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상대적으로 설명이 될 뿐이며, 절대적인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어는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다. 인간의 이성, 언어로는 절대적인 것을 이야기할 수 없다.'
'뭔가 하나를 건드린다는 것'으로 진실을 알게 된다면, 이제까지 위태위태하게 쌓여있던 지식들과, 내가 경험했다고 말하는 일들, 내 생각이라 말하는 것들, 각 학분분야의 이론들, 과학 실험들, 권위 있다, 최고다 하는 사람들의 말들, 책들,, 결코 절대적일 수 없는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모든 것들은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는 그 진실을 알게 되었는데, 무너지는 게 무엇인가? 본래 절대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너져서 산산조각 날 것도 없다. 그저 이제까지 만들어진 것 모두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 그것들이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허무함과 그와 동시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유클리드 기하학 속에서 모든 이론을 세우고 있었던 기하학, 가우스가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를 뒤집어엎었는데도 아무것도 무너진 것은 없었다. 그래, 이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언어로 표현된 학문, 이론으로는 진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왜 공부를 해야하는가? 언어는 절대로 진짜베기를 표현해 낼 수 없다고 하는데, 그러면 왜 글을 읽고 써야하는가? 하는 난관에 부닥쳤다.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그냥 손 놓고 밥이나 먹으며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 아닌가? 아무리 공부해도 진리를 알 수 없을 텐데 뭐 하러 공부를 해야 하는가? 그런데 뭐, 재밌는걸 어쩌겠는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무엇인가?에 대해 찾아보지 않고는 못베기겠는데, 찾고 공부해야지 어쩌겠는가?
그래서 공부는 안 하겠다 정말 하기 싫었는데 그거 잘 됐네~! 한다면 안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살면 된다. 더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면 그만이다. 그저, 내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해 엄청 열심히 공부해서 죄다 이해해 놓고 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는데 (머리가 안 좋아서 이런 일은 일어나기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긴 안다^^;), 다른 이론이 나타나 이 이론을 뒤집어 버렸을 때,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생길 뿐이다. (내가 완전 천재여야만 할 수 있겠지만,) 지금 구축되어 있는 이론이 영 아닌것 같을 때, 아주 만약에, 내가 뒤집을 수 있을 때 무서워하지 않고 뒤집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 진리요, 나를 따르라' 하는 권위자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아주아주 조금 생길 뿐이다! (사실 아직 다 무서운 건 마찬가지긴 하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이, 사실이 아니라고 뒤집어질 때도 마땅히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게 가장 무섭고 어려운 일이다. 나만의 세상이 무너질 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발전의 길로 가는 가장 큰 과정 중 하나일 것이다.
BU멤버가 되면서부터, 공부하는 것이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다. 나는 원래 공부하는 걸 좋아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타과 학생들 사이에서도 꿋꿋이 혼자 타과 수업을 신청해 들었고, 그 과목들은 성적이 바닥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생명과 수업이라도 교수가 내는 과제가 엉터리면 남들 밤새면서 열두장씩 써내는 과제도 나는 수업 시작 15분 전에 달랑 세장 써내서 최하점을 받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생물학도이니 여기에 집중해야만 하고, 공부를 할 거면 평생 생물학 공부만 해야 된다고 주입이 됐다. 남들은 전공 학점 채우고 성적 맞춘다고 재이수하고 점수 따기 쉬운 과목들을 열심히 찾아 듣고 있고, 취직을 하기 위한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난 내가 뒤처지고 있는 줄 알았다. 뭔가 한계가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식의 공부는 더 이상 파낼 것도 없고 더 파낼 힘도 없는데,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그저 일상이 좌절이고 지침 그 차제였다. 그래서 더더욱 다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부가 싫어졌다! 그런데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무엇이든 내가 생물학과를 나왔든, 아님 그냥 직장인이든, 아직 대학을 안 갔든, 나이가 어리든, 많든, 하면 되는 것이었다. 절대적인 것은 없고, 세상에는 더 알고 싶고 재미있는 공부할 거리가 아주아주 많으며, 그걸 공부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된다는 걸 BU에서 점점 깨달아가고 있다.
by i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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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 개그프로에 ‘놀고 있네'라는 코너가 있다. 취직을 못한 백수 2명이 자신이 되고 싶은 직업이나 미래에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등을 떠올리며 상상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고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여자 친구가 없는, 노력을 해도 생기지 않는다는 내용의 ‘안 생겨요’라는 코너도 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풍자해 웃음을 주고 있지만 씁쓸한 것이 현실이다. 88만 원 세대, 삼포세대, 잉여족 등 젊은 세대를 표현하는 씁쓸한 신조어가 많다.
시험 중심의 획일화된 교육 속에서 대학 하나만을 바라보며 공부하고 대학에 와서는 오직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에만 열중한다. 그러다 대기업에 취업하면 성공한 사람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고 취업난에 허덕이게 된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취업 준비기간이 늘어나면서 취업 시기는 점점 늦어진다. 학자금 대출 등으로 빚을 진 상태에서 취업을 하게 되고 이를 다 갚지 못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면 더 큰 빚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즉, 부채 율만 계속 늘려가고 있는 것이다.
1920~39년생 준비도 안 했는데 100세 시대 “얼마나 더 살질 몰라 더 막막”, 1940~54년생 ‘마지막 10년’ 1억 원 흑자세 대, 그래도 병들어 큰돈 들까 걱정, 1955~69년생 현재 소비수준 계속 유지하면 국민연금 있어도 40%가 파산, 1970~83년생 육아, 부모님, 용돈, 대출이자 노후대비하라는데 돈이 없어, 1984~93년생 평생 14억 벌지만 쓸 돈 더 많아, 평균 2억 원씩 빚지는 末年(말년)이라며 한국인의 마지막 10년을 잘 표현해 놓은 글이다.
20대에 일하여 60대에 은퇴하여 80세 정도에 삶을 마무리하는 세대에 비해 30세 때 일을 시작하여 50대에 은퇴를 하고 100세까지 살아가는 (어떤 연구소에서는 150세까지 살 꺼라 예측) 현 2030세대는 더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는 듯하다. 예전 세대처럼 대학만 졸업하면 취업이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부동산으로 돈을 벌던 시대도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고학력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학위의 중요성도 감소했고 디지털 혁명으로 상당수의 직업군이 자동화되어 직업들이 사라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자원은 수명 증가로 인한 ‘시간’뿐인 것 같다. 지금 생활이 너 힘들고 빡빡해서 노후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기존 직업들이 사라지고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새로운 직업들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고 시대 흐름에 맞추어 끊임없이 공부하고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할 것이다.
by Mir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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