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사고로 배우는 과학의 원리' p.16~23, 26~39 내용이 우리의 삶에서 의미하는 바

'학문의 본질'에 대해 안다고해서 살림살이가 나아지는가



모든 학문은 증명할 필요가 없는 자명한 법칙인 '공리'로부터 시작한다. 공리논리적으로 짜집기 하여 정리를 만들고 정리가 쌓이면서 하나의 학문 체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학문의 처음 시작인 공리는 그 정의 그대로 절대적이며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증명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사실 공리는 '자기 언급의 패러독스'로 인해 진위 여부를 증명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괴델은 학문의 불완전성 정리를 증명했다.



'우리가 아무리 공리를 선택하고 모순이 없어 보이는 이론 체계를 구축한다고 해도 그 이론 체계에 모순이 없음을 자기 안에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선택한 공리가 정말 옳은지 증명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또한 '논리'라는 것도 증명 불가능한 약속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삼단논법을 예를 들면, A=B라는 전제에서부터 비약과 모순이 있다. A와 B는 엄밀하게는 다른 것이다. 정말 같다면 A=A일 뿐인데 의미를 갖게 하기 위해서 서로 다른 A와 B를 같은 것이라 비약을 통한 약속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A=B이고 B=C라면 A=C'라는 논리에 대해서 마땅한 '필연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직관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렇게 여기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논리적'이라 여기고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과 절대적인 '필연성'을 지닌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두 가지 개념을 자주 혼동하고 학문이 절대적 필연성을 가진 논리로 쌓아올린 '진리'라는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공리와 논리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면 학문은 객관적이며 절대적이지 않고 오히려 '상호주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학문의 본질'이다. 이러한 학문의 본질에 대해 아는 것이 왜 중요할까? 이것을 안다고 살림살이 나아질까?


우리가 사는 시대는 '창조적 지식경제'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지식'을 배우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적용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또한 현대 사회는 변화의 흐름이 너무나 빠르다. 과학기술의 날개 돋친듯한 발달과 새로운 정보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평생 공부할 것인지 분별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만약 학문의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하나의 학문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깊게 그 분야에 대해 공부하였다고 해도 여전히 전체적인 큰 그림은 보지 못하며 좁은 분야에만 매몰돼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학문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이해와 함께 여러 학문 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을 수 있는 사람은 지식이 중요한 현대사회에서 발 빠르고 유연하게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문을 절대적이라 여기는 잘못된 시야는 좁은 세계관으로 이어진다. 많은 20-30대의 사람들이 '청년기'라는 환상에 빠져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문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것을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하나의 학문으로 세상을 절대적으로 재단해버리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절대적인 주어진 길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자신만의 길이 있고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편협한 선택을 하게 되고, 만족스럽지 않은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식을 접하고 공부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접한 지식과 정보들이 인간의 삶을 좌우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의 본질에 대해 아는 것은 삶의 본질에 대해 아는 것과 같다.


사실 학문의 한계를 알고 나면 적지 않은 혼란을 느끼게 된다. 학문이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학문을 계속 발전시키는 이유는 학문을 하는 것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모든 학문이 증명 불가능한 공리로부터 시작한다 하더라도 모든 학문이 대등하지는 않다. 어느 학문이 현실세계와 더 잘 맞아떨어지고 유용함을 주는지 상대적인 적절함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기준으로 적절함의 기준을 세워야 하고, 어떻게 분별력을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떠오른다. 마치 기존의 판을 모두 불태우고 새로운 판을 짜는 듯한 혼란이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혼란을 이겨내고 단단한 학문적 토대를 갖춘 후에 학문을 배워나간다면 사상누각이 아닌 어느 것에도 무너지지 않는 학문적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흔들리지 않는,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by Elizabeth Taylor P.


posted by BU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