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다큐 + 복잡계 공부 후기

Review

Ahisha | Beyond University



복잡계는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과 더불어 우리에게 뉴턴적 우주보다 더 큰 우주를 보여주는 학문이다. 복잡계를 통해 세상을 움직이는 숨은 질서들이 표면으로 드러나게 됐다. 이에 따라 수많은 사건들이 비선형적인 특성을 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개별 요소들을 단순히 합하는 것으로는 그 사건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선형성을 전제로 하는 뉴턴적 패러다임만을 통해 세상이 어떤 곳이고, 인간은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데 한계가 있음이 명백히 드러나게 됐다.

복잡계는 '복잡성'을 보이는 시스템을 다루는데, '복잡성'은 현상들의 겉모습 뒤에 숨어 있는 공통된 질서를 의미한다. 따라서 복잡계 연구의 가장 큰 목적은 다양한 복잡계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성질을 발견하고, 그것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복잡계 구성요소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이들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그 결과 특정 임계점에 도달하고 새로운 현상, 즉 '창발'을 빚어낸다. 다큐에서 모래알 컴퓨터 실험을 통해 여러 복잡한 요인들에 의해 생겨나는 새로운 현상의 예를 볼 수 있었다. 우리도 모르는 어느 순간, 여러 요소들이 얽히고 설켜 '임계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모래알 실험은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특히 '인과'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다. 이성과 논리는 선형성을 전제로 하고, 선형성은 시간 개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이라는 환성 속에 갇혀 모든 사건을 '시간적 인과관계' 틀 안에서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복잡계 실험에서 볼 수 있듯 실제 세계에서의 인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끌개'를 심층적으로 다룬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에서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관찰 불가능한 원인(abc)이 3차원 세계 내에서 관찰 가능한 현상(a→b→c)으로 귀결되는 것을 본다. 여기서 abc가 끌개 패턴을, a→b→c가 관찰할 수 있는 사건을 의미하는데, 호킨스 박사는 사건들 사이의 '연결'은 오직 관찰자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거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간주하고 열심히 그 원인을 찾아왔다. 지금까지의 역사 서술 방식이 딱 그러했다. 하지만 시간의 선형성 안에 갇힐 필요가 전혀 없다. 이는 최근에 배운 <대서양 문명사> 머리말에도 잘 드러나 있는데, 머리말을 보면 <대서양 문명사>는 연대기적 서술에서 벗어나 이런 복잡성을 잘 반영한 역사 서술 방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하나의 국제적 표준이 완성되기까지 문명의 다이내믹스와 국제관계에서 보이는 복잡성에 주목하고 있음을 밝혔다. 아래는 해당 머리말의 일부분을 가져온 것이다.

"결국 카오스 이론에 쓰이는 카오스는 완전한 무질서가 아니고, 겉으로는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놀라운 규칙성을 갖고 있는 현상을 가리킨 다. 카오스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결정론적 예측가능성이 발휘될 수 있는 코 스모스적 세계란 카오스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카오스 이론은 입력의 미세한 차이가 출력에서 엄청나게 큰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는 초기조건에의 민감한 의존성에 주목한다.

카오스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기존의 국제정치학은 카오스의 일부에 불과 한 코스모스적 세계관에 기초해서 구조를 상정하고 모델을 고안하여 단선적 예측을 시도함으로써 그 한계를 노정했던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현재의 상태를 일목요연하게 브리핑하는 데에는 효과적일 수 있었지만, 초기에는 무시해도 좋을 것처럼 보이나 궁극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불러오는 변수들을 배제한 과도한 단순화로 말미암아 관찰자 지신을 포함하고 있는 비단선적 얼개구조의 파악에 실패하였다. 역사적 접근 방법은 기본적으로 크고 작은 이야기들에 의존함으로써 단순화된 인수를 재조합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얼개구조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로 역사에서 모든 것이 '우연'들로 이뤄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이 예측불가하고, 비선형적인 사건들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이성적인 이해를 벗어나서 어떤 것이 원인인지 파악할 수 없기에 우연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많은 부분을 거기에 의존하게 된다.

뉴턴적 사고는 엄청난 유용성을 주지만 그런 인식 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있다. 하지만 이제, 여러 첨단 학문들을 통해 비로소 과학의 영역 안에서 비선형적인 현상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아닌 게 아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우주의 일부를 설명하고 있고, 본질을 건드린다. 이것이 마크 뷰캐넌이 말한 '혁명'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사고의 중심축을 완전히 옮겨주었고, '인과'라는 틀에서 벗어나 더 큰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시야를 넓혀줬기 때문이다.


"혼돈은 유한한 지각일 뿐이다. 모든 것이 더욱 큰 전체의 일부다"
- 데이비드 호킨스


패턴 속에서 세상은 정말로 단순하게 보였다. 그리고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이 너무도 명백했다. 인간과 우주, 그리고 끌개와 자유의지. 복잡계 과학을 통해 이 키워들 간의 관계성이 더 명확해진 듯하다. 호킨스는 비선형성이 영적 실상으로 가는 통로라고 말한다. 우리는 불확실하고,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학문적 마음을 내세우며 세상의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 논리적 근거가 없다고 내면의 느낌을 따르지 않을 것인가. 내가 보고 생각하는 것이 다가 아님을 복잡계와 같은 학문들을 통해 더 겸허히 수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영화 '제인 구달' 예고편을 보고 후기 내용과 관련해 와 닿은 구절이 있어서 같이 넣고자 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서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으로, 우리의 관점을 뒤바꿀 준비가 되어야 해요"

"인간은 물론 자연과도 평화롭고, 조화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해요. 자기 삶의 매 순간이 이 세상의 변화에 영향을 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해요."
- 제인 구달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