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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은 너를 A에서 B로 이끌 것이다. 그러나 상상력은 너를 어느 곳이든 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논리는 우리가 불편을 겪지 않으려고 만든 약속일뿐이다. 그러므로 논리학을 통해서 배우고 알 수 있는 것은 A에서 B같이 약속된 정의, 공리들 위에 세워진 상대적인 개념들뿐이다. 그러나 상상력(수업의 맥락으로 풀면 학문, 언어 등의 체계들의 상대성을 아는 것)은 약속된 개념들을 비판할 수 있는 분별력도 가질 수 있게 해줄뿐더러 공리와 약속에 매여있지 않은 지식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나는 단 한 번도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발견한 적이 없다.
: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과 수업의 맥락에서 볼 때 '이성적인 사고'는 상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논리와 언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학문을 학습하고 공부할 수는 있겠지만 자명하지 않은 것들,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 같은 것들은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서 발견할 수 없다.
by Tony
사물의 본질을 밝혀내야지 자신이 믿는 바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논리학은 너를 A에서 B로 이끌 것이다. 그러나 상상력은 너를 어디까지나 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데카르트는 말했다.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고로 존재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내가 나라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필연성이 없다. 데카르트는 중세 시대의 신의 권위가 무너지고, 르네상스로 인해 아리스토텔레스가 확립한 학문체계가 틀릴 수 있다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명한 진리를 밝혀낼 수 있는 인식론에 관한 철학을 확립했다. 가장 근본적인 원리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이었고, 이는 의심하는 나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따라서 나는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는 명제를 자명한 것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이러한 철학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한들, 사유하는 것이 나라는 것이라는 명제는 결국 사유하는 것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공리를 전제하기 때문에 이 명제가 의의를 지니는 것뿐이다. 이러한 숨은 공리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식을 나라는 실체로 받아들여 고통을 받는다. 이는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의 의식 대역에 따르면, 자아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니 데카르트는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한다는 것은 결국 의심한다는 것을 전제하니, '의심하는 나'라는 실체가 곧 '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도대체 '의심하는 나'라는 것이 '나'라는 실체와 어떠한 필연성이 있느냐고, 그렇다면 데카르트는 또 같은 말을 반복할 것이다.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의 너무도 자명해 보이는 삼단논법마저도 비논리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루이스 캐럴 패러독스처럼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바로 이 점을 명백하게 알았다. 자연세계를 관찰해서, 자연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실험과 수식으로 하나의 패러다임을 세우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철학자들의 사유 행위는 때때로 자연세계와 무관한 약속된 공리 위의 현학적인 말장난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는 데카르트뿐만 아니라, 자신이 믿고자 하는 바를 옳게 만들기 위해 논리적 타당성을 추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첫 번째 명언)
물론 자연세계를 설명하는 반증되지 않은 패러다임이더라도, 실체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증되지 않는 패러다임뿐만 아니라, 자연세계를 모순 없이 설명 가능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태동하는 경우에도, 결국 학문이라는 것은 언어와 수식이라는 약속된 체계 위에서 자연세계를 묘사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물리학이라는 학문 그 자체의 위험성 또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뉴턴 역학 패러다임이 오랫동안 자명하게 받아들여지면서, 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은 시공간의 절대성에 대해 의문을 던져보지 못 했다.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은 순전히 아인슈타인의 머리에서 나왔기에 참고문헌이 없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뉴턴 역학이라는 것도 결국 세계를 바라보는 공리 위에 반증되지 않은 패러다임에 불과했지만, 반증되지 않는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세계관은 자신도 모르게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기 때문이다.
언어, 수식의 절대성, 공리의 절대성, 시공간의 절대성. 이는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결코 자각하지 못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논리가 아닌, 상상력을 강조했다고 생각한다. 자연세계(실재 세계)를 묘사하는 도구들 언어, 수식, 공리, 기존의 패러다임에 자유로운 상상력 말이다. (두 번째 명언)
by Oc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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